[j Global] 반세기 전 세계 최초로 ‘다운 점퍼’ 만든 몽클레르 레모 루피니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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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우면 웃는 남자. 다운재킷 브랜드인 몽클레르의 회장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레모 루피니(49) 얘기다. 이탈리아 남자 루피니는 2003년 프랑스 태생 브랜드인 몽클레르를 인수한다. 이 회사 주력 제품은 거위털이나 오리털을 넣은 점퍼. 그러다 보니 기온이 떨어질수록, 겨울이 길수록 사업이 생기를 띤다. 지난달 서울 청담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단독 매장)를 열기 위해 방한한 루피니 회장을 만났다. 그는 롱코트 속에 얇은 패딩을 내피처럼 받쳐 입고 나왔다. 홍보를 위해 큼직한 몽클레르 다운재킷을 걸치고 나오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인터뷰하는 자세도, 답변도 시종일관 ‘쿨’했다.

글=박현영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자사 상품으로 빼입고 나올 줄 알았는데.

 “몽땅 우리 제품을 입지는 않는다. 입고 있는 청바지는 3주 전 뉴욕 출장 때 유니클로에서 샀다. 코트와 셔츠는 모두 동네 양복점에서 맞춰 입는다. 요즘엔 코트 안에 패딩을 겹쳐 입는 걸 즐긴다.”

●미국 보스턴대에서 패션 마케팅을 공부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의류회사를 세우기도 했는데, 왜 몽클레르를 인수했나.

 “대학을 마치고 아버지가 운영하던 의류 회사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독립해서 ‘뉴잉글랜드’라는 남성 셔츠 전문 회사를 차렸다. 스포츠웨어와 여성복까지 만들었는데, 좋은 기회가 있어서 팔았다. 흥미로운 역사를 가진 브랜드를 경영해보고 싶었다. 마침 몽클레르가 매물로 나왔다.”

 몽클레르는 60여 년 역사에서 주인이 세 차례나 바뀌었다. 당시에도 경영 위기였다. 브랜드는 탄탄했지만, 규모는 영세했다. 매장 하나 없이 도매 납품만 했다. 매출의 95%를 이탈리아에서 올리는 내수 브랜드였다.

몽클레르 다운 점퍼는 해발 6000~8000m에 오르는 전문 산악인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1962년 몽클레르 다운 점퍼를 입고 히말라야 탐험에 나선 산악인들.

●인수 후 어떻게 바꿨나.

 “상품 구성이 무척 복잡했다. 재킷으로 시작된 브랜드지만 바지·셔츠·치마·양말 등 이것저것 다 팔고 있었다. 뿌리이자 본질인 다운재킷 DNA로 돌아가는 걸 핵심 전략으로 세웠다. 다른 상품을 모두 정리했다. 1000개의 상품을 가진 브랜드보다 재킷 한 가지에서 최고가 되는 걸 목표로 세웠다.”

●다운재킷 DNA란.

 “1952년 솜으로 속을 채운 침낭과, 덮개가 달린 텐트를 만드는 회사로 출발했다. 54년엔 산 정상에 위치한 공장 근로자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한복을 만들었다. 세계 최초의 다운재킷이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산악 원정대와 등반가들이 혹한 추위에도 방한이 잘되고 가벼운 다운재킷을 입기 시작했다. 64년 그레노블 겨울올림픽에서 프랑스 알파인스키팀을 후원한 걸 계기로 프랑스팀을 상징하는 3색 수탉이 로고가 됐다.”

 원정대의 방한복은 스키복으로 진화하고, 스키복은 도시로 내려왔다. 준야 와타나베, 지암비스타 발리 등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해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고, 색깔을 가미하면서 다운재킷은 겨울 외투로 다시 태어났다. 몽클레르는 루피니 회장이 인수한 지 7년 만에 명품 브랜드로 떠올랐다. 몽클레르 다운재킷은 한 벌에 150만~200만원 한다. 웬만한 밍크코트 수준인 300만~500만원이 넘는 고급 라인도 있다. 다운재킷은 세계 11개국 50개 매장에서 팔린다. 지난해 매출액은 2억2000만 유로(약 3300억원). 루피니가 회사를 살 때 치른 가격 3500만 유로(약 530억원)의 여섯 배가 넘는다.

●일반 다운재킷보다 3~4배 이상 비싸다. 이유가 뭔가.

 “첫째는 수입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둘째는 거위털 뽑는 걸 모두 수작업으로 하기 때문이다. 5년·10년을 두고 꺼내 입을 수 있다면, 비싸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해마다 다운재킷을 살 것이냐, 한 번 사서 오래 입을 것이냐 결국 선택의 문제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유니클로에서 살 수도 있고, 몽클레르에서 살 수도 있다.”

64년 몽클레르가 후원한 알래스카 원정대장인 프랑스 산악인 리오넬 테라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지 않아야 오래 입을 텐데.

 “그래서 현대적인 느낌을 갖되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추구한다. 화려한 색이나 디자인은 사양한다. 경제위기가 지나면서 때마침 명품 시장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오래가는 상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덕분에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에 전년 대비 성장률이 최고 높았다.”

●여름엔 뭘 파나.

 “여름에도 패딩이 팔린다. 여름 매출액이 전체의 35%를 차지한다. 150g, 180g짜리 가벼운 제품이 주로 나간다. 레인 코트, 트렌치 코트 등 여러 종류의 재킷도 구비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스트레스를 받겠다.

 “대륙마다, 나라마다 계절이 다르다. 나폴리는 4~5월에도 덥지만, 모스크바는 겨울이 길고 춥다. 남반구는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다. 세계로 나가는 데 공을 들이는 것에는 이런 맥락도 있다.”

●향후 성장 전략은.

 “너무 빠른 속도로 성장하지 않는 것이다. 그보다는 세계 진출에 관심이 크다. 이젠 글로벌하게 사업을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몽클레르를 입은 모델 엘 맥퍼슨.

●천천히 가려는 이유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다. 최고가 되기 위해선 좋은 이미지를 쌓고, 품질과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느림’의 장점은 더 생각하고, 많이 시도하고, 제대로 된 포지셔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홍콩·상하이에 매장을 낸 뒤 기다리면서 고객의 반응을 본 뒤 베이징에 매장을 냈다. 한 걸음씩 나가는 게 좋다. 성장보다 일관성,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프랑스산 거위털만 고집한다던데, 이유가 있나.

 “아닌데. 처음엔 프랑스에서 100% 조달했는데, 지금은 프랑스산이 60%쯤 된다. 프랑스 거위털이 세계 최고 품질이긴 하다. 푸와그라를 만들기 위해 거위에게 영양 많은 음식을 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산량이 모자란다. 회사를 너무 빨리 키우고 싶지 않은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지금은 폴란드와 이탈리아 북부에서도 좋은 거위털을 사온다.”

●다운재킷은 어떻게 고르는 게 좋은가.

 “새의 복부와 날개 아랫부분을 깃털, 턱밑과 가슴팍의 작고 부드러운 털을 솜깃털이라고 한다. 솜깃털은 작고 부드러워서 보온성이 좋고 가볍다. 우리는 그 가슴털의 맨 끝부분만을 수작업으로 잘라서 쓴다. 거위털과 오리털은 품질이 좋고 나쁨이 아니라, 서로 성질이 다르다. 몽클레르에서도 제품에 따라 선택해 쓴다.”

●세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 중소기업에 대해 조언해달라.

 “현지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행을 많이 하라고 권한다.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인데도 한국은 일본과 완전히 다르고, 중국과도 다르다. 스위스는 이탈리아와 전혀 다르다. 같은 유럽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는 매장을 열기 전에 그 도시의 길거리를 많이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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