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구제역 초기 대응 실패, 책임 물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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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상 최악의 구제역(口蹄疫)은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 방역당국이 규정대로만 처리했더라면 말이다. 알고 보니 규정 위반과 안일한 대응이 구제역 창궐(猖獗)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소·돼지를 23만 마리나 매몰하고, 예방백신을 접종함으로써 몇 년간 수출까지 막힌 참사가 방역당국의 방심(放心)에서 비롯됐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방역망이 뚫린 과정은 당국의 무사안일(無事安逸)을 그대로 보여준다. 안동의 축산농이 구제역 증상을 신고한 것이 지난달 23일. 그런데 가축위생시험소는 간이검사만 실시하고는 음성으로 나오자 그냥 방치했다. 잇따른 신고로 차단 방역이 실시된 것은 5일이나 지난 28일이다. 그동안에 구제역 농가의 한우 15마리가 전국으로 빠져나갔고, 수많은 사람이 왕래했으며, 분뇨처리차량이 경기도까지 운행했다고 한다. 규정대로라면 간이검사 결과와 관계없이 수의과학검역원에 정밀검사를 의뢰해야 했다. 올해 1, 4월의 구제역 때 간이검사에서 음성으로 판정된 가축이 정밀검사에서 양성으로 밝혀진 경우가 많아 보완된 규정이다. 이대로 절차를 밟았으면 바로 구제역이 확인돼 큰 피해 없이 초기에 차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뒤늦게 구제역 통제소를 설치한다, 차단 벽을 쌓는다 부산을 떨었지만 결과적으로 ‘행차 뒤 나팔’이었던 셈이다.

 방심의 결과는 참혹하다. 매몰 보상비용이 벌써 3000억원을 넘었다. 축산농가는 언제쯤 가축 사육이 가능할지 발을 동동 구르고, 관련 가공식품의 수출도 막혀 축산업의 기반이 흔들릴 위기다. 그런데도 구제역은 앞으로 얼마나, 어디까지 확산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구제역을 차단하지도,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그저 매몰하고 백신만 꺼내는 한심한 방역당국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올 들어 세 번째인데, 이런 당국의 무능력 때문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된 것 아닌가. 정부는 이번 구제역 발생의 전 과정을 철저히 점검하라. 그래서 방역당국의 잘못에는 상응한 책임을 묻고, 구멍이 숭숭 뚫린 방역시스템은 촘촘하게 고쳐라. 한순간의 방심이 초래한 참사로는 그 피해가 너무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