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형이 대세인가

조인스랜드

입력

대형이 과연 대세인가. 서울 강남ㆍ분당ㆍ용인에서 시작된 대형 아파트 신드롬이 강북권과 지방으로 확산하고 있다. 값도 중소형보다 더 올랐다. 시장 주도 평형이 30평형대에서 40평형대 이상으로 바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소득이 증가하고 웰빙문화가 확산하면서 대형을 찾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지만 공급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아파트값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수요 증가’‘공급 감소’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강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대형 선호현상은 일시적인 ‘바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역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채 무턱대고 대형을 매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확산하는 대형 쏠림 현상=지난해만 해도 대부분 지역의 주도 평형은 30평형대(전용면적 25.7평)이었다. 수요층이 가장 두터웠기 때문이었다. 이러다보니 조기 분양을 위해 30평형대 단일 평형으로 공급하는 업체도 많았다. 40평형이 인기가 많은 곳은 강남권과 일산 신도시 등 일부 지역에 그쳤다. 강남은 상대적으로 고소득층이 많아 평형 넓히기 수요가 많았고, 일산은 주변에 대형 평형 공급이 적어 희소성이 부각된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 들어 대형 평형 인기는 ‘전국적인 현상’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 초 판교 신도시 대형 평형의 분양가가 높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이런 현상이 촉발됐다. 채권입찰제가 적용되는 판교 신도시 25.7평 초과 아파트 분양가가 평당 2000만원이 넘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당과 용인 일대 대형 아파트값이 급등세로 돌아섰다.

급기야 정부가 25.7평 초과 평형에 대해 채권ㆍ분양가 병행입찰제를 적용해 분양가를 평당 1500만원 선으로 낮추겠다고 했지만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용인의 한 중개업자는“판교에 혐오시설이 들어서고 대형평형 공급도 많지 않다는 소식에 수지나 분당 대형 아파트 씨가 말랐다. 사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팔려는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대형 평형이 가격상승을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그동안 대형수요가 많았던 서울 강남은 지난달 19일 시행된 개발이익환수제 등 재건축 규제로 대형 몸값이 더 뛰었다.

강남과 용인과 분당 대형 아파트 값이 급등하다 보니 주변 지역까지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수원ㆍ평촌ㆍ군포ㆍ화성 등 대형이 올 들어 많게는 5000만∼1억원 치솟은 것이다. 요즘은 서울 강북권, 부산ㆍ창원ㆍ대구 등 지방 대도시로 확산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원 영통지구의 한 중개업자는 “2∼3년 전만 해도 30평형대가 아파트값을 주도했지만 올해는 40평형 이상이 먼저 오르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경남 창원시 한 중개업자는 “40평형 이상 아파트값이 많이 오르자 빚을 내서라도 매입하려고 한다”며 “한마디로 대형 신드롬”이라고 말했다.

왜 그런가=레피드 코리아 권대중 사장은 “대형 아파트가 시세차익(캐피털 게인)을 많이 챙기는 현실이 대형 쏠림현상이 나타난 이유”라고 진단했다.

대형 아파트를 사놓으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감이 대형아파트 값을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대형평형 실수요가 많이 늘었다면 전세가격도 올라야 하는데 매매 가격만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용인 등은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30%대로 떨어졌다.

달라진 세제 또한 대형 쏠림현상을 부채질했다. 김종필 세무사는 “올 들어 1가구 3주택자 양도세 중과(60%)조치가 시행된 데 이어 내년부터 비투기지역의 살지 않는 집에 대해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부과키로 하면서 여러 채를 보유하기보다 인기지역의 대형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소득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대형을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이 늘어난 것도 큰 요인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의료ㆍ법률ㆍ금융 직종을 중심으로 고소득층이 많이 생겨나고 벤처를 통해 큰 돈을 번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대형수요 기반이 예전보다 넓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인기 언제까지=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강남권의 경우 대형평형 강세 현상이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권의 경우 이미 4∼5년 전부터 주도평형이 30평형대에서 40평형대로 이동한 상황인데 재건축 규제로 공급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김사장은 “외환 위기 당시 소형의무비율이 폐지되면서 1∼2년 뒤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급등했다는 점을 되짚어봐야 한다. 대형수요가 많은 강남권 등은 수급 불균형이 해소될 때까지 시장을 주도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만 정부가 재건축 규제를 합리적으로 풀어 대형 공급을 늘릴 때는 대형 쏠림 현상은 다소 수그러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양증권 종합금융팀 부동산 담당 고희언 부장은 “하지만 그동안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을 고려해볼 때 재건축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푼다 해도 수급불균형이 해소되기 위해선 4∼5년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당과 용인의 경우 변수가 생겼다. 그동안 이들 지역 대형 평형 아파트값이 급등한 것은 판교에 대형이 많이 공급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한 이유였는데 정부가 공급을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전체 공급가구의 10% 정도를 늘릴 경우(2680가구) 주변 아파트 오름세가 다소 진정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 중개업자들은 10% 물량 증가로선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용인의 한 중개업자는 “당분간 시장 과열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지 일대 대형평형 아파트값(평당 1100만∼1300만원)과 판교 분양가 차이가 여전히 커 이 차이를 메울 때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이런 점은 조심=전문가들은 강남권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대형 평형이 계속 주도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중대형 수요가 늘어나긴 했지만 수요 증가 폭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빨리 오른 것 같다”며 “바람에 의해 오른 것은 일시에 거품이 빠질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핵가족화가 갈수록 심화하고 이혼 등으로 단독가구도 늘고 있는데 대형 수요 확대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다할 일자리를 갖지 못한 젊은 층들이 많은 데 과연 계속해서 대형 수요가 늘어나겠느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대형 강세 현상이 모든 지역으로 확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도 동두천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40평형대 이상보다는 30평형 대가 더 인기다. 내집마련정보사 함영진 팀장은 “서민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대형 아파트는 고급 주거지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워 주목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강남권이나 수도권 신도시 등을 제외하곤 대형 평형 수요층이 두텁지 않다. 대형 신드롬에 휩쓸려 빚을 내 무리하게 매입했다가 나중에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박사도 “대형은 경기를 많이 타므로 매입 대상지의 대형 공급 실적이나 자신의 자금 여력 등을 잘 따져 매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c)중앙일보조인스랜드. 무단전제-재배포금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