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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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중앙시조대상 시상식이 22일 중앙일보 본사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신인상 수상자 이태순 시인, 대상 수상자 오승철 시인, 신인문학상 시조부문 수상자 김성현씨, 본사 문창극 대기자. [김태성 기자]


오늘날 시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네 정한을 담아온 시조의 힘을 확인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22일 오후 본사 로비 1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제29회 중앙시조대상과 중앙시조신인상, 제21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중앙시조백일장 연말 장원) 시상식이다. 올 한 해 한국 시조단의 값진 성과를 축하했다. 대상을 수상한 제주도 시인 오승철씨 등 전국에서 시조 시인 100여 명이 모여 수상자들을 격려했다. 중앙시조대상은 최고의 권위 있는 시조문학상이다. 시조단의 연말 큰 잔치였다.

제주도 시인 오승철(53)씨. 제주의 말맛을 살린 ‘셔?’로 제주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앙시조대상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를 하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데도 굳이 수상소감을 e-메일로 보내왔다.

A4지 한 장에 담은 소감에서 오씨는 ‘나는 더도 덜도 아닌 탐라의 아들’이라고 했다. ‘마을마다 등짐 같은 오름들은 모두가 폭발로 푹 패인 분화구와 역사의 거센 바람을 기억하고 있’으며 ‘상처가 없는 오름, 그 아픔을 기억하지 못하는 오름은 결코 아름다운 능선과 울림과 향기를 갖지 못’한다고 했다.

 나고 자란 고향 제주의 가장 대표적인 자연환경에 빗대 ‘고통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는’ 자신의 역설적인 시론(詩論)을 밝힌 것이다.

 제주도의 자연 환경, 4·3 사건으로 대표되는 굴곡의 역사 등 제주적인 것들은 오씨에게 단순한 시의 소재가 아니다. 그의 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 자체다.

 중앙시조대상 시상식이 열린 22일 오씨는 아내 강경아(50)씨와 형 승록(55)씨 등 가족 친지, 자신이 키워낸 제주의 제자 시인들과 함께 서울을 찾았다. 시상식 직전 오씨를 만났다. 제주와 시조와의 관계를 물었다.

 오씨는 대뜸 “내 시조는 어디까지나 4·3 사건의 해원굿 같은 것이고, 해녀로 대변되는 제주 어머니들의 숨비소리 같은 것”이라고 했다. 4·3 사건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게다. 해방 직후 혼란스런 상황에서 섬사람들이 좌익 산사람, 군경 토벌대로 나뉘어 당시 도민 30만 명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 현대사의 최대 참극이다. 숨비소리는 해산물을 따느라 물속에서 2∼3분 숨을 참았던 해녀들이 물 밖으로 솟아올라 비로소 내지르는 ‘호-이’하는 소리다. 오씨는 “관광객에게는 평화롭게 들려도 해녀에게는 일종의 비명 같은 것”이라고 했다.

 오씨는 “제주도의 모든 어머니는 해녀였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도 60년간 물질을 했다. 또 “삼촌 이내 촌수의 친척 중 4·3 피해자 없는 집안이 없다”고 했다. 오씨는 “그렇다 보니 아직까지 제주 사람들은 잠재적인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4·3사건을 입에 올리지조차 못했던 모진 세월이었다.

 한(恨)이든 정념이든 극한적인 경험과 감정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기능은 무릇 예술의 ‘제1 덕목’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왜 시조여야 했던 걸까.

 오씨는 “탐라 문화와 정서를 한몸에 표출할 수 있는 예술 형식이 시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제주는 육지 사람 입장에서는 바다에 갇힌 섬일 뿐이지만 제주 사람 입장에서는 수평선 넘어 사방으로 트인 열린 공간이다. 오씨는 “시조는 얼핏 정형률에 갇혀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학 장르”라고 했다.

 물론 시조의 형식적 제약에 구애되지 않는 경지에 오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씨는 1981년 등단했다. 그는 “등단하고 나서도 20년 정도까지는 표현하고 싶은 바를 자유롭게 시조에 담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은 다르다. “별빛이든 태양이든 새소리든 시조라는 우주 안에 담아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이런 자신감은 유난히 공을 들여 시 씨는 오씨의 시작 스타일과 관계 있다. 오씨는 과작(寡作)으로 유명하다. 보통 시조 한 편 쓰는 데 서너 달이 걸린다. 지금까지 쓴 시조가 모두 108편에 불과하다. 그래서일까. 오씨는 자신의 시조 전체를 암송한다. 제주의 한과 역사는 오씨 안에서 느리게 아름다움으로 곰삭는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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