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희소병’은 있어도 ‘희귀병’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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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망막색소변성증-. 개그맨 이동우는 2003년 날벼락 같은 진단을 받는다. 치료 방법이 없는 병이다. 그는 결국 정상인의 5% 정도밖에 볼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절망이 엄습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세상에 나왔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연극을 하는 등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과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5%의 기적’이라는 책에 담아내기도 했다.

 이동우가 걸린 병처럼 보기 드문 질병을 일반적으로 ‘희귀병’이라 부른다. 하지만 ‘희귀병’이란 용어는 부적절한 측면이 있다. ‘희귀(稀貴)’는 ‘드물 희(稀)’와 ‘귀할 귀(貴)’로 구성된 한자어로 ‘드물어서 매우 진귀한 것’을 뜻한다. 희귀 금속, 희귀 우표 등을 생각하면 ‘희귀’의 의미가 쉽게 다가온다.

 드물어서 귀하게 대접받는 병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희귀병’은 몹시 어색한 용어다.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말이 ‘희소병’이다. ‘희소(稀少)’는 매우 드물고 적음을 뜻한다. 어떤 현상의 많고 적음만을 나타내는 가치중립적 단어다. ‘희소 상품’ ‘인구 희소 지역’ 등처럼 쓰인다. 따라서 드물게 발견되는 병이라면 ‘희소병’이라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배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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