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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번역의 시대에서 ‘원어 직수입’ 시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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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1950년대 말의 무악재 길. 당대 언어로 ‘도라꾸’와 말 달구지가 지나는 길 가에서 지게꾼이 힘겨운 표정으로 걷고 있다. 지게꾼 뒤편 멀리에 ‘구루마’를 끄는 사람이 보인다. 서양 문물과 일본 문물이 ‘신문물’을 구성한 한국의 근대는 영어와 일본어가 언어생활의 핵심 요소가 된 시대이기도 했다. 지금 ‘구루마’는 ‘손수레’라는 새 이름을 얻었으나 도라꾸는 ‘트럭’으로 발음만 바뀌었다. [사진=『격동 한반도 새지평』]

1860년께의 어느 날, 마차를 타고 도쿄 시내를 지나던 메이지 일왕은 길가 상점 간판에서 낯선 단어를 발견했다. 그 뜻이 궁금했던 왕은 시종에게 그 상점에서 파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오라고 지시했다. 재빨리 달려갔다 온 시종은 서양식 가죽 보따리를 파는 곳이라고 보고했다. 간판에 씌어 있던 글자는 ‘かばん(가반)’이었고, 일왕은 몇 번 ‘가반, 가반이라…’고 되뇌었다. 사실 간판의 글자는 상점 주인이 잘못 표기한 것이었으나 일단 왕이 서양식 가죽 보따리를 가반으로 부른 이상, 네덜란드어 ‘카바스’를 잘못 쓴 것이든 중국어 ‘캬반(挾板)’을 잘못 쓴 것이든 그 물건은 가반 말고 다른 이름을 가져서는 안됐다. 우리 국어사전에 오른 지도 이미 오래된 단어, 가방의 유래에 관한 속설 중 하나다.

 사람은 단어로 세계를 인지하며 의식 속에서 재창조한다. 세계를 구성하는 개념과 물질의 종류는 단어의 수를 넘어서지 못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세계의 크기와 자국어 사전의 두께는 같다. 새 물질이 발견되거나 새 물건이 발명되면, 그에 대응하는 새 단어도 창조돼야 한다. 유럽인들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숱한 문물과 단어들을 창조했다. 그러나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요소가 늘어난 만큼 정신세계가 풍요로워지지는 않았다. 근대인들은 인조물에 관한 단어를 새로 만들고 기억하는 대신 꽃과 나무, 풀과 짐승 등 자연물에 대한 수많은 단어들을 잊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양 문물이 동양에 물밀 듯 들어올 때 동양인들은 처음 접하는 물건과 개념을 인지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발음을 따라 하기도 어렵고 글자로 표시하기는 더 어려운 원 이름 대신 자국어가 수용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꾸는 작업이 진행됐다. 대개는 한자를 조합해 새 단어를 만드는 식이었고, 때로 가방처럼 정체가 모호한 단어가 실수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나, 이는 자국 문화를 기반으로 서양 문물을 이해하고 전통과 근대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창조적인 일이었다. 우리는 중국·일본보다 늦게 서양 문물을 받아들인 덕에 그들이 이미 만들어 놓은 전기·기관·신경·민주주의 같은 단어들을 가져다 쓸 수는 있었으나 그 대신 서양 문물을 주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최근 IT 혁명으로 산업혁명 때만큼이나 많은 새 물건이 쏟아져 나오면서 디엠비·와이파이·트위터·태블릿 같은 새 단어들이 언어생활을 바꾸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단어들을 번역할 여유도 이유도 없다. 새 물건의 확산 속도가 ‘실시간’인 데다 세계화와 영어화가 같은 뜻인 양 이해되기 때문이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