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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땐 가슴 두근, 끝나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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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14면

골프 코스는 흔히 여성에 비유된다. 골퍼들은 미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러하듯 코스와 깊이 교감해야 한다. 실패하면 실연당한 사람처럼 쓰라린 대가를 치르고 만다. 2006년 마스터즈에 출전한 최경주가 오거스타 13번 홀 근처의 개울에 빠진 공을 찾고 있다. [중앙포트]

스캔들이 터진 뒤 우승을 못한 타이거 우즈의 부진을 섹스와 연결시키는 ‘야담’(야한 농담)이 유행했다. “이전엔 밤에 나쁜 일을 많이 해서 낮에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밤에 건전하게 살고부터는 낮에 헤드업을 하기 시작했다” “밤에 그냥 잠만 자기 때문에 몸에 힘이 빠지지 않아 스윙이 딱딱하다” “홀(hole)을 찾는 능력을 잃어 퍼트를 못한다” 등이다. 골프에는 유난히 성적 농담이 많다.

골프·골프장 속에 녹아 있는 에로티시즘

골프를 섹스와 연결시키는 얘기도 아주 많다. ‘골프와 섹스의 공통점 열 가지’ ‘골프가 섹스보다 좋은 점 열 가지’ 등은 오래전에 생겨나서 수십 개의 버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로 골프와 섹스는 홀에 넣는다는 기본 원리가 같다. 시작할 때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친 뒤엔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것도 매우 비슷하다. 골프를 가장 잘 친 타이거 우즈가 사실은 ‘밤의 황제’였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골프와 섹스는 한 세트로 어울려 다닐 운명인가.

골프의 본질이 그래서일까. 골프 문화도 매우 마초적으로 발전했다. 양치기들의 놀이였던 골프를 스포츠로 격상시킨 사람들은 지독한 남녀불평등주의자들이었다. “인류는 평등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남녀 차별은 유달리 심했던 프리메이슨이 초창기 골프 클럽과 그 문화를 만들었다. 그들은 골프를 여성을 정복하는 행위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클럽에 ‘여자와 개는 출입금지’ 등의 푯말을 붙여 놓고 여자들을 배척했다. 클럽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면서는 “골프(GOLF)는 Gentlemen Only Ladies Forbidden(남성 전용, 여성 금지)의 약자” “골프는 여성 금지의 스포츠, 즉 girls off였는데 이것이 줄어들어 골프가 됐다”는 농담을 만들어냈다.

20세기 초반의 프로 골퍼인 토미 아머는 “골프 코스는 여자와 닮았다. 다루는 솜씨 여하에 따라 즐겁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손댈 수 없이 거칠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생각이 골퍼들의 전반적인 생각이었다. 골프 코스 디자이너는 대부분 남자다. 그들은 코스를 여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히는 송호 골프디자인그룹 송호(53) 대표도 “골프 라운드는 여자를 만나는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코스는 예뻐야 하고, 어려운 홀과 쉬운 홀이 리듬감 있게 어울려야 하고, 계속 새로운 매력이 나타나야 한다”고 말했다.

골프 코스는 굴곡이 있다. 설계자들은 여성의 몸처럼 예쁜 선으로 골퍼를 유혹한다. 여성이 관능적일수록, 골프 코스가 굴곡이 많을수록 남성들은 매력을 느낀다. 남성 골퍼들은 예쁜 여자 앞에서 긴장하듯 아름다운 코스에선 실수가 잦다. 날씬한 여인의 허리라인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도그레그 홀에서 티샷을 실수하고 글래머의 가슴을 닮은 봉긋한 그린에서 퍼트에 실패한다.

페어웨이는 코스의 얼굴이다. 여성들은 세심하게 얼굴을 단장한다. 주름을 없애고 잔털을 깎는다. 페어웨이도 미끈한 상태를 유지해야 골퍼들이 흡족해 한다.

여자들은 거의 매일 다른 옷을 입고, 종종 헤어스타일을 바꾼다. 항상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골퍼들이 좋아하는 훌륭한 코스는 비슷한 홀이 거의 없다. 매 홀 독특한 모습으로 골퍼를 맞는다. 그렇지 않으면 골퍼들이 금방 질린다. 홀마다 개성이 있더라도 핀 위치에 따라 분위기가 확 바뀌지 않는 골프 코스도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유명 코스 설계자 대부분이 남자인 것은 공간 지각력이 여자보다 낫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코스를 정복 대상으로 생각하는 남성 골퍼의 마음을 잘 읽어서이기도 하다.

골프 용품은 남자의 분신이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이 공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러프에 들어간 공을 오랫동안 찾는다. 공을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의 남성성을 잃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는 것일 수 있다. 고환은 영어로 ‘balls’다. 이 볼을 홀에 집어넣는 것이 골프다. 자신의 마크를 한 공을 멀리 쳐내려는 욕망은 영역을 넓히려는 수컷들의 본능의 표출이라고 보는 해석도 나온다.

남자들의 드라이버에 대한 집착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드라이버는 힘의 상징이다. 길고 헤드가 크
다. 남성 골퍼들은 드라이버를 무의식적으로 성기와 연결시킨다. 성적 능력이 약해지는 나이가 될수록 긴 샤프트를 가진 헤드가 큰 드라이버에 집착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에 따르면 수컷들의 존재의 이유는 섹스다. 남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존재의 이유가 조금씩 사라져 간다고 느낀다. 젊을 때처럼 왕성하게 활동하지 못하는 대신 골프 코스를 정복하면서 존재감을 찾는 것일 수도 있다. 리 트레비노는 “골프는 옷 입고 하는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체력적, 도덕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것을 못하게 되면서 차선책으로 골프 코스를 찾는 것이다. 그러나 골프를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골퍼들은 침대에서처럼 코스에서도 낙담을 한다. 골프가 섹스보다 나은 이유 중 하나는 무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드라이버를 바꾸면서 남성성을 회복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골프의 스코어를 세는 시스템이 다른 스포츠와 다른 것도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스포츠에선 점수가 높을수록 좋은데 골프는 반대다. 파 4홀에서 3타를 치면 1점을 빼고 7타를 치면 3점을 준다. 골프의 섹슈얼리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해석한다. 코스를 여자라고 보면 골퍼가 적은 타수에 홀인 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여성은 사랑하는 남성과 오랫동안 함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멀리 치려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 빨리 끝내고 다음 홀을 찾아 떠나려 한다. 그래서 코스는 적은 타수에 끝내고 가는 골퍼에게 벌, 즉 마이너스 점수를 주는 것이다.
반대로 남자의 눈에선 마이너스가 승리의 상징이 된다.

홀에 집어넣는 것은 코스에 대한 승리의 마지막 행동이다. 오르가슴에 비견된다. 퍼트에 관한 경구 중 “Never Up, Never In”이라는 말이 있다. 홀에 미치지 못하면 홀인 할 수 없다는 말이다. 왜 Up을 썼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겨울 등 페어웨이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페어웨이에서 공을 옛날 스코어카드의 길이인 6인치(15.2㎝) 이내에서 옮길 수 있는 룰을 적용할 수 있다. 왜 하필 6인치일까. 원로 언론인인 최영정씨는 저서 유익한 골프용어 정답에서 “남성의 상징이 발기했을 때의 길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고 썼다.

이런 내용을 보면 골프는 남자들이 만든 남자들만의 스포츠다. 그렇다면 LPGA 등 성행하는 여자 골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선수들이 대거 몰려가기 전 LPGA 투어는 ‘레즈비언 투어’라는 말이 있었다. 정상을 다퉜던 W선수를 포함, 레즈비언으로 알려진 선수가 상당수였다. 그 선수들은 대부분 남자 역할을 했고 여자친구들이 투어를 따라다녔다. 아직도 레즈비언은 남아 있다고 한다. 크리스티나 김은 2010년 발간한 크리스티나 김의 스윙이라는 책에서 “LPGA 투어 선수 중 10%는 동성애자”라고 했다.

아시아 여성 선수들 중에선 동성애자가 거의 없다. 대신 서양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남자 프로 골프보다 여자 프로 골프가 더 인기가 있는 것이다. 피겨 스케이팅이나 체조는 여성 스포츠지만, 골프는 축구나 야구처럼 남성 스포츠다. 남성과 여성의 경기력 차이는 크다. 한국 여성 골퍼들의 국제 경쟁력이 뛰어나고 잘 한다고 해도 남자들의 경기력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자 선수에 실력이 처지는 여자 선수들의 골프대회가 더 많고 주목을 받는다. 대회 운영 대행사의 한 관계자는 이유를 이렇게 해석한다. “한국에서는 대회 자체보다는 VIP들의 프로암 행사가 훨씬 더 중요하다. 대부분 남성인 VIP들은 자신보다 샷 거리가 길고 무뚝뚝한 남자 선수보다는 20대 초반 예쁜 여자 선수들과 함께 라운드 하려 한다.”

그러나 어찌 그 이유 하나뿐이랴. 여자골프에서는 골퍼들이 아예 코스와 일체를 이루어 그 자체로서 남성 중심의 골프 팬들에게 어필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러고 보면 남성 골퍼들이 와일드한 스윙으로 코스를 정복해 나가는 데 비해 여성 골퍼들의 플레이는 마치 풍경 속에 녹아 든 듯 코스와 골퍼가 구분되지 않을 때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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