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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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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세밑이다. 서울광장의 크리스마스트리가 지난주 불을 밝혔다. 도심의 가로수를 장식한 등(燈)들이 연말 분위기를 돋우고 있다. 지금은 각종 조명기기들이 넘쳐나지만 등의 역사는 길다고 보기 어렵다. 중국 은(殷)나라 갑골문에 등 이란 글자는 없었다. 서주(西周)에 와서야 촛불을 뜻하는 촉(燭)이 먼저 등장했다.

 등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한다. 어려움 속에서 우연히 귀인을 만나 도움을 받는 것을 암실봉등(暗室逢燈)이라고 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사자성어로 등하불명(燈下不明)이다.

 등은 불교에서 불법(佛法)을 상징한다. 석가(釋迦)가 제자들을 모아 놓고 말없이 꽃을 꺾어 보이자 가섭(迦葉)이 홀로 이심전심(以心傳心) 그 뜻을 깨닫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염화미소(拈華微笑)다. 불교에서 법맥(法脈)을 계승하는 것을 가섭이 부처의 등불을 처음 이어받았다 하여 전등(傳燈)이라고 부른다. 강화도에는 고찰(古刹) 전등사(傳燈寺)가 있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창건될 당시의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다. 고려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이 절에 옥등(玉燈)을 시주하고, 송(宋)나라에서 구해온 대장경을 보관하게 한 것을 계기로 이름을 바꿨다.

 ‘관리의 방화만 허용되고 백성들이 등불을 켜는 것은 불허한다(只許州官放火, 不許百姓點燈)’라는 열 두자 성어가 있다. 관리가 백성들의 자유와 권리를 묵살하고 전횡하는 것을 비판하는 말이다. 사자성어로는 주관방화(州官放火)다. 송나라 시인 육유(陸游)가 편찬한 『노학암필기(老學庵筆記)』에 그 유래가 전한다. 송나라에 전등(田登)이란 이름을 가진 주(州) 장관이 있었다. 그가 다스리던 지방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이름(登)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피휘(避諱)인 셈이다. 어기는 자는 가혹한 형벌로 다스렸다. 백성들은 등(燈)까지 화(火)로 바꿔 불렀다. 중국에는 본래 정월 대보름 즈음에 등불을 밝히는 풍속이 있다. 주 관원들은 등불을 밝힌다(點燈)라고 못하고 불을 놓는다(放火)로 고쳐 적었다. 이를 본 백성들이 관리 전등의 횡포를 풍자했다는 이야기다.

 오늘밤 노르웨이에서는 영어(囹圄)의 중국 민주화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를 위한 노벨 평화상 시상식이 열린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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