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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215조’ 운명 가르는 예산소위 회의장 가보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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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여의도 국회 본청 638호.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조정소위가 엿새째 열리고 있는 곳이다. 아침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심사가 이어지자 한나라당 권성동 의원은 아예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었고,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양복 대신 검은색 점퍼를 입었다. 보좌진과 기획재정부, 소관 부처 공무원까지 50여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다 보니, 한 의자에 두 명이 엉덩이를 반씩 걸쳐 앉기도 한다. 사람들의 체열로 퀴퀴한 냄새가 회의장 안을 달구고, 자료는 쌓이고 쌓여 작은 산맥을 이룬다. 그러는 중에도 출입문은 수없이 여닫힌다. “내 예산을 지켜 달라”는 애원성 쪽지배달 때문이다.

 66㎡ 남짓한 공간에서 2011년도 예산안 215조 9000억원(본예산 기준)의 운명을 칼질하고 있는 예산안조정소위의 풍경을 6일간 들여다봤다.

 ◆4대 강 반대하지만 지역예산은 별개=민주당이 4대 강 예산 전액 삭감을 내걸면서 민주당 소속 소위 위원들은 지역구 예산과 당론 사이에서 종종 ‘딜레마’에 빠졌다. 6일 하수처리장 관련 예산심사가 대표적인 예다. 하수를 처리할 때 오염물질 인(P)을 걸러내는 시설을 만드는 ‘총인처리강화사업’은 민주당이 전액 삭감하기로 한 예산이다. “4대 강 보 설치로 인한 녹조 발생을 막기 위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멤버인 민주당 정범구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인 충북 음성군 총인처리시설 사업에 2억6000만원 증액 의견을 내 논란이 불거졌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총론은 반대하면서 각론은 찬성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제동을 걸었고, 당황한 정 의원은 즉각 증액을 철회하겠다고 말해야 했다.

 ◆필리버스터까지 동원(?)=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3일 외교통상부 소관 예산 심사에 제동을 걸었다. “최소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예산이 어떻게 편성돼 있는지 독립적인 보고를 받은 뒤에 전체 예산을 심사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2일에는 기획재정부에 전 부처의 특정업무경비 편성내역과 산출근거를 요구했다. 이처럼 민주당이 사사건건 문제를 삼자 여당에선 “민주당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행위)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참다 못한 한나라당 권성동 의원이 3일 “기본적인 팩트는 스스로 공부하고 오라. 진행이 안 되지 않느냐”고 불평을 터뜨리자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우리가 의도적으로 의사일정을 지연시킨다는 식인데 이는 모욕”이라고 했다.

 ◆실세 기관은 다르다=정부는 “전체 예산 인상률은 5%”라고 했다. 그런데도 인상률이 60%에 육박하는 부처가 있다. 이재오 특임장관실이다. 그 때문에 계수조정소위에서는 ‘실세 예산’ 논란이 일었다. 서갑원 의원은 5일 “특임장관실 장관이 바뀌었다고 예산이 60% 늘어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했다. 특임장관실이 여론조사 비용으로 책정한 10억원도 표적이 됐다. 올해(2억원)보다 크게 늘어서다. 김해진 특임차관은 “대통령이 특별한 임무를 지시한다. 현안조사에 필요하다”고 설명했으나 이주영 예결위원장이 관련 심사를 보류했다.

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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