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갱년기 호르몬 요법 부작용 줄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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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주부 양모(53)씨는 3개월 전부터 갱년기를 의심하는 증상을 겪고 있다.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면서 땀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불면증에 피로가 쌓이면 만사가 귀찮아져 짜증도 부쩍 늘었다. 양씨는 “월경이 2개월째 없다”며 “폐경인가 싶어 호르몬제를 먹을까도 생각했지만 부작용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갱년기 증상은 난소가 노화해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 분비량이 급격히 줄면서 나타난다. 안면홍조·야간 땀·질 건조·요실금·우울증 등 증상도 다양하다.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박형무 교수(대한폐경학회장)는 “증상은 중년 여성의 75%에서 나타나는데 이 중 25%는 5년간, 약 5%는 평생 계속된다”고 말했다.

에스트로겐 감소는 단순히 갱년기 증상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골(뼈)밀도가 약해져 골절 위험이 증가하고, 심혈관계 질환과 치매의 발병률을 높인다. 이외에도 대장암과 치아 손실, 눈의 황반변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또 안면홍조 등 증상이 있는 사람에게 심장병과 기억력 저하, 골밀도 손실 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갱년기 증상은 폐경 초에 가장 심하다. 따라서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하다면 약물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기본적인 치료는 호르몬요법. 박 교수는 “에스트로겐을 쓰면 갱년기 장애가 좋아지지만 자궁내막을 증식시켜 암이 생길 수 있다”며 “자궁내막을 보호하기 위해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같이 투여하는 복합요법을 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호르몬요법에 대한 부작용 우려다. 2002년 50~79세의 폐경 여성 1만6608명을 대상으로 한 미국여성건강주도연구(WHI)에서 복합 호르몬요법에 대한 부정적인 결과가 발표됐다.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을 쓰면 안면홍조와 질 건조증·골다공증·대장 및 직장암 위험은 감소하지만 대조군에 비해 유방암 발생 26%, 심장질환 29%, 뇌졸중 41%가 증가한다는 보고가 나온 것이다. 또 불규칙적인 질 출혈과 체중 증가, 복부 팽만감, 유방통 등 부작용도 덧붙여졌다. 이때부터 호르몬요법을 꺼리는 사람이 늘었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채희동 교수는 그러나 “WHI연구는 평균연령이 63세로 높고 다른 나라보다 심장질환이 많은 미국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부정적 결과가 과장됐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라고 소개했다. 채 교수는 “초기 폐경기인 55세 이하라면 호르몬요법으로 갱년기 증상을 줄이면서 골다공증과 대장직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며 “5년 이하로 쓰면 유방암 걱정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호르몬요법이 두렵다면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고려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중년 여성을 위해 백수오(사진)라는 약용식물을 써왔다. 청구경희한방병원 신정애 원장은 “따뜻한 성질의 백수오는 생식기능이 떨어진 여성에게 효과적”이라며 “월경으로 부족해진 혈액에는 당귀, 약해진 뼈와 관절을 보충해주는 속단도 갱년기 여성에게 처방하는 약재”라고 설명했다. 동의보감은 백수오에 대해 ‘혈기를 더하며 뼈를 튼튼하게 하고, 정력을 좋게 하며, 머리카락을 검게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관동의대 제일병원(구 성균관의대 삼성제일병원)은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이 갱년기 여성에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 2003년부터 1년간 폐경 여성 48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안면홍조와 질 건조증·수면장애·집중력·근관절통·골밀도·중성지방 등 갱년기 증상의 개선 효과가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혈중 에스트로겐과 난포자극호르몬에는 변화가 없어 호르몬요법을 썼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관찰됐다.

 당시 연구를 이끌었던 아주대병원 가정의학과 이득주 교수는 “백수오 등 생약 복합추출물은 갱년기 증상을 개선하는 식물성 에스트로겐 물질”이라며 “천연식품이기 때문에 부작용 없이 약효를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복합제제라 비타민과 미네랄·효소·칼슘 등 갱년기 여성에 도움이 될 만한 성분이 복합적으로 들어있다”고 말했다.

 백수오와 당귀·속단 등 복합추출물은 지난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건강기능신소재(NDI) 승인을 받았다. 여성의 갱년기 질환을 개선하는 특허물질로 안전성과 기능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호르몬 관련 신소재 개발기업인 내츄럴엔도텍 김재수 대표(한국바이오협회 이사)는 “이 복합추출물은 매년 수백 건의 신물질을 신청받아 2~3건만 최종 승인을 받는 엄격한 심사를 통과했다”며 “우리나라의 신물질 개발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은 현재 나우푸드, 내이처스웨이, 비타민숍, GNC 등 세계적인 건강기능식품회사들과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내년 초 본격적인 시판을 앞두고 있다.

글=이주연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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