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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꽉 다문 채 피격현장 시찰 “다시는 공격받지 않게 하겠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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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호 08면

김관진 신임 국방부장관(가운데)이 주종화 해병사령부 공보장교(왼쪽)와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과 함께 4일 북한 포격으로 폐허가 된 연평도 피해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연평도=연합뉴스]

4일 오후 2시25분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굉음이 연평도에 울려 퍼졌다. 헬리콥터 3대가 차례로 연평도를 향해 날아왔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탄 검은색 공군 헬리콥터가 산 중턱에 있는 해병대 연평부대 내 연병장에 착륙했다. 헬리콥터를 타고 먼저 도착한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중장)이 거수경례로 김 장관을 맞이했다. 김 장관의 뒤를 따라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과 수행원 10여 명이 내렸다. 헬기에서 내리는 김 장관의 얼굴에는 표정이 거의 읽히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김 장관이 헬리콥터 안에서 연평도의 피격 현장을 내려다보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고 전했다.

취임식 날 헬기 타고 연평도 간 김관진 국방부 장관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연평도로 날아온 그는 연평부대장으로부터 간략한 업무보고를 받은 뒤 해병대 장병들을 격려했다. 군 관계자는 “김 장관이 ‘여러분이 강해져야 연평도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부대원들은 해병대 특유의 ‘필승’ 구호로 답했다.

김 장관이 폐허가 된 민가에 모습을 드러낸 건 1시간30분쯤 지난 오후 4시가 되어서였다. 그의 이동로와 방문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조치다. 취재진은 김 장관의 행방을 쫓느라 분주했다. 별판을 가린 군용 지프차 한 대와 소형버스가 마을 중에서도 가장 포격을 많이 받은 연평읍 내 명동거리 앞 해안도로에 섰다. 지프 운전석 옆자리에 김 장관이 앉아 있었다. 주로 야전 지휘관이 앉는 자리다. 그는 흰색 와이셔츠에 은색 넥타이, 검은색 정장바지를 입었다. 위에는 얼룩무늬 야전상의를 입고 있었다. 움푹 들어간 눈매가 날카롭고 흔들림이 없었다. 꽉 다문 입술에 엷은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군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차에서 내린 그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좁은 골목길을 30여m쯤 걸어 명동거리 피격현장으로 갔다. 골목길에는 포격 때문에 부서진 창틀과 유리조각이 무수히 밟혔다. 그는 바닥에 널린 유리조각과 파편을 굳이 피하려 들지 않았다. 그가 걷는 동안 저벅저벅 유리조각이 밟히며 부서졌다.

피폭의 현장이 펼쳐지자 김 장관의 얼굴에 착잡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폴리스라인을 넘어 무너진 건물더미 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가볍게 쥐고 있던 그의 두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적의 도발에 (우리 군이) 너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연평도를 잘 지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김 장관의 행동과 표정엔 군더더기 없이 단순했다. 잔해를 집어 들거나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지 않았다. 언론을 의식해 과장되게 침통한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취재진의 요청에 못 이겨 1분가량 사진 촬영할 기회를 준 게 전부였다. 앞서 연평도를 방문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건물 잔해에서 검게 그을린 보온병을 들고 탄피라고 했다가 논란에 휩싸였다. 송영길 인천시장은 피격 현장에 있는 소주병을 보고 “진짜 폭탄주네”라고 농담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김 장관의 표현은 짧고 직선적이었다. “적이 또 도발한다면 강력히 응징하겠다”고 말할 때 눈빛이 번득였다. 말하는 동안 주먹을 굳게 쥔 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피격현장에 머무는 10분 동안 그는 ‘적’이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는 피격현장에 머무는 동안 따로 주민을 만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민간인을 위로하거나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방문한 게 아니어서 방문 일정을 굳이 알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지프에 오르기 전 김 장관은 “다시는 적이 도발하지 않도록 서해 5도에 전력을 증강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취임 후 첫 방문지를 연평도로 정한 것에 대해 “다시는 우리 땅을 공격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최전방 어업기지인 연평도에서 어민들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적이 다시는 도발할 엄두를 못 내도록 확고히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또 김 장관의 취임 이후로 연기됐던 사격 훈련에 대해서도 “날씨만 좋으면 가급적 빨리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는 “사격훈련은 우리의 전투력을 향상하기 위해 우리 땅에서 하는 것”이라며 “적들이 우리가 자기네 땅에 (포탄을) 쐈다고 억지를 부리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내내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김 장관이 부대로 돌아간 뒤 5분쯤 지나 헬리콥터 엔진소리가 들렸다. “눈빛이 살아있는 게 영락없는 군인이네.” 현장을 방문한 김 장관을 멀리서 지켜본 한 주민이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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