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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도입 신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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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기준 온실가스 배출량(BAU) 대비 30% 감축하겠다는 자발적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패널(IPCC)’이 개발도상국에 권고한 감축범위 중 최고 수준이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기후변화협약에 의한 온실가스 의무감축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국제무대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선도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강력한 온실가스 감축정책이 산업계의 국제경쟁력을 훼손해 경제성장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특히 목표관리제 시행과 더불어 정부가 추진 중인 배출권거래제의 도입은 산업계에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두 제도 모두 국가 차원의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관리업체에 목표를 할당해 이행하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유사한 정책 수단이다. 그러나 목표관리제는 온실가스 배출권을 무상으로 할당하지만, 배출권거래제는 유상으로 할당하기 때문에 기업의 과중한 부담으로 인한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과 산업계 국제경쟁력 저하가 우려된다.

 현재 배출권거래제 도입 국가(27개국)의 대부분이 유럽연합(EU) 국가다. 우리나라의 산업 경쟁 상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일본·호주·중국·인도 등은 도입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11월 초 실시된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를 거둠에 따라 2012년까지 배출권거래제 관련 법안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일본은 민주당의 참의원 선거 참패로 인해 법안 추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호주는 당초 2010년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기로 발표했으나,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도입 시기를 미룬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도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가 2012년부터 본격 적용되는 상황에서 유사한 정책수단인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려는 계획을 이해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앞서나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지난달 우리나라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국가 위상이 한층 더 높아졌다. 특히 이번에 우리나라가 새롭게 도입한 G20 비즈니스 서밋에서 ‘녹색성장’을 주요 의제로 다뤄 글로벌 녹색리더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전 세계의 경제적 주도권이 G20 국가에 집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G20 국가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를 차지하고, 누적 배출량은 90%를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의 도입은 G20 국가들과 동시에 시행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 이를 통해 산업계의 국제경쟁력이 저하되지 않는 방향으로 국가 온실가스 감축 정책이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