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내 이름은 윤호영 ‘리틀 김주성’ 독립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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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주성

동부의 포워드 윤호영(26·1m98㎝)은 프로 3년차가 되도록 자신의 이름보다도 별명으로 유명했다. 그의 별명은 ‘리틀 김주성’이다.

 2008년 프로에 데뷔한 윤호영은 늘 팀 동료 김주성(31·2m7㎝)의 그늘에 가렸다. 프로 데뷔 초기에 그는 김주성의 백업 역할에 머물렀고, 김주성이 자리를 비울 때나 그 자리를 메우는 ‘리틀 김주성’으로 불렸다. 그에게는 달갑지 않은 수식어였다.

 그러나 이번 시즌 윤호영은 그 수식어를 지워가고 있다. 윤호영은 김주성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느라 자리를 비운 지난 한 달 동안 팀의 중심 노릇을 톡톡히 해냈고, 김주성이 복귀한 후에도 여전히 빛을 내고 있다.

 윤호영은 28일 KT와의 경기에서 28분간 뛰며 16득점을 올렸다. 팀 내 최다득점으로 김주성보다 5점을 더 넣었다. 윤호영은 이날 “주성이 형은 대학시절부터 나의 롤 모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윤호영’이라는 이름 세 글자로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동부 윤호영이 인삼공사와의 1라운드 경기 도중 동료에게 패스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윤호영은 2008년 동부 유니폼을 입으면서 큰 기대를 모았다. 농구팬들은 윤호영이 김주성과 한솥밥을 먹으며 신인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는 어정쩡했다. 파워포워드로 뛰자니 김주성의 벽이 높았고, 스몰포워드로 나서기에는 슛이 모자랐다. 게으른 탓에 기량이 늘지 않는다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윤호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올여름 일본 전지훈련 때부터다. 이번 시즌 팀에 새로 합류한 김영만 코치의 도움이 컸다. 강동희 동부 감독은 김 코치가 부임하자마자 “윤호영에게 외곽포를 장착시키라”는 특명을 내렸다.

 김 코치는 “호영이가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선수 시절의 나와 비슷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마귀 슈터’로 불렸던 김 코치는 수비가 좋은 장신 슈터로 이름을 떨쳤다. 김 코치는 “윤호영이 그동안 골밑 플레이에 익숙했던 터라 외곽슛 쏘는 것을 상당히 어색해 했다. 대화를 많이 했고, 연습을 더 많이 시켰다”고 했다. 윤호영은 매일 야간훈련을 하며 하루에 500개씩 슛을 던졌다. 효과는 뚜렷했다. 윤호영은 올 시즌 경기당 1.75개(12경기·21개)의 3점포를 터뜨리고 있다. 이 부문 7위다.

 ‘김주성이 돌아오면 주춤할 것’이라던 예측도 보기 좋게 깨버렸다. 김주성이 골밑에서 버티고 있으니 외곽에서 더 많은 기회가 생겼다. 28일 경기에서 그는 3점슛 3개를 림에 꽂았다. 김 코치는 “호영이가 한번 감을 잡으면 상승세가 무섭다”고 했다. 시즌 전 동부를 우승후보에서 빼놓았던 전문가들이 이제는 앞다퉈 동부가 강팀이라고 말을 바꾸고 있다.

 윤호영은 “2주 후에 딸 지효가 태어난다. 큰 힘이 된다”며 “이번 시즌을 마치고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할 계획이다. 그 전에 내 자리를 확실하게 잡아 놓아야 태어날 딸에게 당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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