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상식보다 위대한 전략은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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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호 02면

‘쿠바 위기’는 1962년 소련이 핵미사일을 실은 함정을 미국 앞마당인 쿠바로 이동시키면서 발생했다.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던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는 소련의 협조를 받아 미국을 공격하려 했다. 미국인은 두려움에 빠졌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언어와 행동이다. 그는 흐루쇼프나 카스트로의 선의를 믿지 않았다. 케네디는 소련이 쿠바로 함정 이동을 강행하면 제3차 세계대전도 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의 선언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쿠바 해상을 봉쇄하고 소련 배가 진입하면 무력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함정들을 해상에 출동시켰다.

10월 22일, 케네디의 연설엔 전쟁으로부터 국가를, 두려움으로부터 국민을 구하려는 군 통수권자의 고뇌가 배어 있다. 고뇌의 결론은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선택한 길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길은 하나의 국가로서 우리의 기질과 용기,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가장 부합하는 길이다. 자유의 대가는 항상 크다. 미국인은 항상 그 대가를 치러왔다. 우리가 결코 선택하지 않을 길은 항복이나 복종이다. 우리의 목표는 힘의 승리가 아니라 권리의 수호다. 우리의 목표는 자유를 희생해 평화를 얻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자유와 평화를 함께 얻는 것이다. 자유와 평화가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달성되길 희망한다. … 우리는 성급하거나 불필요하게 세계 핵전쟁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 핵전쟁에 직면해야 한다면 언제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 직면해야 한다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케네디의 언어와 행동에 흐루쇼프는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 10월 28일, 흐루쇼프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단하고 쿠바에 배치된 미사일을 소련으로 회수하겠다고 통보했다. 흐루쇼프의 굴복에 화가 난 카스트로는 독자적으로 미국의 정찰기를 격추시키겠다고 위협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힘이 부쳤던 것이다.

62년 10월 22일에서 28일까지 ‘쿠바에서의 일주일’은 가장 위대한 전략은 상식이란 걸 잘 보여 준다. ①존재는 공격에 반응한다. ②위험엔 희생이 따른다. ③희생을 회피하면 굴종하며 살아야 한다. ④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이달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해에선 항공모함이 동원된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다. 천안함·연평도 공격을 당한 뒤 비로소 이뤄지는 훈련이다. 서해 항모훈련은 원래 지난 7월 하려 했으나 중국의 격렬한 반발로 동해로 옮겼다. 중국과 북한은 그때 한국의 서해 영토 수호 의지를 우습게 여겼는지 모른다. 그래서 연평도를 공격한 게 아닐까.

나흘간 실시될 이번 항모훈련과 그 이후에도 청와대와 군은 정치적 고려보다 존재의 상식에 입각한 도발격퇴 행동 양식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적의 공격 의도는 무엇일까, 아군의 반격 뒤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희생을 치르지 않고 넘어갈 순 없을까 같은 머리만 굴리는 책상머리 전략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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