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은 예언이 아니다,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4호 28면

북한의 연평도 폭격, 아일랜드 금융위기,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급속한 기술 발전. 주변에서 벌어지는 급속한 변화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한다. 사람들은 이럴 때 점집을 찾곤 한다. 역술인이나 무속인을 통해서라도 미래를 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사람들의 이런 불안감이 ‘미래학’이라는 학문 영역을 탄생시켰다. 정부는 대통령 직속 기구로 미래기획위원회를 만들고, ‘미래’를 붙인 민간단체도 여럿이다. 하지만 정작 미래학이 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앙SUNDAY가 세계 미래학계의 대부, 하와이대 짐 데이터(77) 교수를 인터뷰했다. 또 다음주부터 그의 미래학과 한국사회의 미래에 관한 글을 6회에 걸쳐 독점 연재한다.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미래학계의 대부 하와이대 짐 데이터 교수

-요즘 당신의 화두는 뭔가.
“세계경제에 관한 것이다. 지금의 세계경제는 지속가능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조만간 바닥을 드러낼 ‘값싼’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속도와 인식이라면 석유가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원을 개발하긴 어렵다. 실물경제가 아닌 금융의 환상에 기반한 세계경제는 불공평하다. 극히 일부만이 엄청난 부자가 되고, 그외 대부분의 사람은 한없이 가난해지는 구조다.”

-당신은 2045년 화성 이주에 관한 연구를 한다고 했다. 마침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이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결국 인류는 그때쯤 환경오염이나 어떤 심각한 문제 때문에 지구를 포기하고 떠나 다른 별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어떤 유명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나?(농담). 그건(지구를 포기하는 것) 나의 진의와는 거리가
멀다. 인류는 결코 지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구는 인류의 집이다. 우리는 지구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인류가 다른 별을 찾아 나서기 전까지, 인류는 결코 이 지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짐 데이터도 보통 사람처럼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같이 가지고 있다. 그는 애매모호한 화법을 즐긴다. “지금의 인류는 지구라는 몸속에서 자라는 암세포와 같다. 암세포는 계속 자라나 몸이 죽어야 그 수명을 다한다”고까지 말했다. 인류의 위기를 지구 안에서 풀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섬뜩한 비유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제로 인류가 그렇게 될 것이란 얘기라기 보다 세상에 대한 심각한 경고다. 기자는 최근 1년간 하와이대에 있는 그의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첫 만남에서 “요즘 화성 이주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말해 기자를 황당하게 했다. 그는 수업 중에도 화성 이주를 자주 얘기했다. 실제로 그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국제우주대학(ISU)의 이사 겸 교수이기도 하다.

“요즘 화성 이주에 관한 연구 하고 있어”
-미래학이란 뭔가.
“아주 간단하다.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의 학문이다.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 어떤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또 과거와 현재를 통해 왜, 사회의 어떤 부분이 변화했는지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또 하나의 미래가 아닌 복수의 대안적(alternative)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론 조직이나 국가가 바람직한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다.”

- 공부하면 미래를 알 수 있는 건가.
“아무도 완벽하게 미래를 알 수는 없다. 반세기 전 미래학이 처음 태동할 때 당시 학자들은 미래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면 미래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미래학자들이 40여 년간 연구해 얻은 결론은 ‘미래는 예언할 수 없다(futures cannot be predicted)’였다.”

-그럼 왜 미래학을 공부하나.
“미래를 정확히 예언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 있는 여러 미래 이미지를 그려보고, 대안이 될
수 있는 좋은 미래를 찾아서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학자에게서 구체적인 미래 예측을 듣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누군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원하는 것은 오직 돈뿐이다.”

-최근 한국에는 많은 미래학자들이 다녀가고 있는데.
“한국인은 매우 미래지향적인 사람들 중 하나다. 아마도 세계에서 핀란드와 싱가포르를 제외하면 한국보다 더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하나의 미래, 즉 지속적인 경제성장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이 그걸 ‘녹색성장’이라고 부른다고 할지라도 그건 여전히 ‘성장’이다. 한국인이 개인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번영하려면, 많은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이런 것들 중에서 선호하는 미래를 찾도록 애쓰는 대안적인 미래관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외부 사람들이 한국의 미래를 말해 주길 바라지 말고, 한국인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고 결정할 필요가 있다.”

-한국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를 비롯한 ‘미래’가 붙은 기관은 많지만 미래학 전공이 있는 대학은 없다.
“대통령 산하의 미래기획위…. 좋다.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일본이나 영국, 핀란드, 스웨덴 등 적지 않은 나라에서 유사한 기구를 두고 있다. 더 바람직하게는 집권 세력과 무관하게 독립적이고 지속적인 미래기구가 설치되는 것이 좋다. 조만간 대학 차원에서도 미래학이 싹틀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학문적 배경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가 미래학자다’라고 나서는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단선적인 미래에 대한 이미지만 가지고 있거나, 환경이나 인구 등 특정 문제만을 고민할 가능성이 크다.”

-당신은 미래학자이면서 정치학자다. 한국의 정치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정치학자로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해온 것이 미래를 위한 정치제도다. 한국은 미국의 정치제도를 많이 따라가고 있다. 대통령제는 18세기 미국에서 당시 사회 환경에 맞게 탄생한 제도다. 현재 미국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맞지 않다. 의원내각제와 비교하자면 대통령제는 독재로 흐르기 쉽고, 국회와 합의를 이루기도 쉽지 않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필요하다.”

77세 나이에도 모터사이클로 출퇴근
평소 “21세기 과학기술을 이용한 ‘전자 직접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 그는 1967년 미국 버지니아공대 학부에서 미국 최초로 미래학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저녁 모임을 싫어한다. 기자는 지난 1년간 단 한 차례도 그와 함께 디너 파티를 해본 적이 없다. 저녁에 그는 가족과 함께 같이 식사를 하고 신문을 읽거나 TV를 본다. 연중 세계 곳곳으로 출장 갈 일이 많기 있기 때문에 하와이에선 가능한 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해보자. 왜 미래학자가 됐나.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어릴 때부터 거대 담론과 윤리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학부에서 고대와 중세철학을 공부한 이유도 그것이다. 둘째는 내 개인적인 집안 환경 때문이다. 난 나의 뿌리, 과거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데이터라는 성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모른다.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와 이모,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일찍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 때문에 나는 아이였던 적도, 남자였던 적도 없었다. 그냥 삶을 힘들게 살아가는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 유난히 집착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6년 동안 교수 생활을 하면서 미래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됐다. 당시(1960년대) 일본은 미국의 모든 것을 따라 하면서 발전했다. 미국은 곧 일본의 미래였다. 자연스레 ‘그러면 미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어느 순간 언론에서 나를 미래학자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루 생활이 궁금하다.
“오전엔 집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보낸다. 오전 5시30분~6시쯤 일어난다. 이때가 전 세계가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나의 동료들이 e-메일 등을 통해 소식을 전해오고 정보를 교환한다. 알다시피 오후 1시쯤엔 학교로 나와 강의를 하고 학생들과 얘기도 나눈다. 저녁시간은 가급적 가족들과 보낸다.

그는 자유분방하다. 80세에 가까운 나이지만 여전히 30년 이상 된 400cc 혼다 모터사이클을 몰고 다닌다. 모터사이클을 탄 세월이 40년을 넘는다. 단발머리 헤어스타일도 특이하다. 기자는 처음 짐 데이터의 얼굴 사진을 보고 할머니인 줄 알았다. 40년 전 젊은 시절 짐 데이터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근육질의 남성이 지금처럼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평소 검정 진바지와 할리 데이비드슨 티셔츠를 입는다. 강의실 공식 복장이다. 오후 1시~1시30분, 연구실에 들어올 때는 으레 까만 헬멧을 들고 ‘헬로~’를 외치며 들어온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기자를 되레 걱정했다. 퇴근 때면 으레 ‘조심해서 타고 다녀’를 외쳤다.

-나이에 비해 무척 건강하다. 그 나이에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는 사람이 몇 되겠나. 비결이 뭔가.
“건강한 유전자 덕분인 것 같다. 어머니도 93세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오래 사셨다. 이모는 96세인데 아직도 살아 계신다. 지금으로서는 특별한 운동을 하는 게 없다. 걷기가 전부다. 과거엔 카누 타기, 헬스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지만 이젠 다 그만뒀다

-왜 모터사이클을 타나. 위험해 보인다.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 주차 공간이 하나밖에 없다. 변호사인 아내가 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나는 모터사이클을 탄다. 둘째는 경제적이다. 한 달 기름값이라고 해봐야 30~40달러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모터사이클은 자동차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덜 위험하다. 사고가 나면 자동차는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크지만 모터사이클은 덜하다.

-부인이 위험하다고 반대하지 않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내가 모터사이클 뒷자리에 앉아서 다녔다.”
짐 데이터는 창의성이 ‘지나치게’ 넘쳐난다. 남들이 보기엔 엉뚱하고 황당한 미래를 꿈꾸고,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덕분에 미래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아마도 예사롭지 않았던 평생이, 이처럼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인 짐 데이터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 짐 데이터의 미래학 이야기
다음 주부터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