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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주는 복지보다 사회안전망이 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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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종석
홍익대 교수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의 두 배 이상인 일본이나 서유럽 국가 국민들의 사적 소비 수준을 보면 우리보다 그다지 높지 않거나 오히려 우리보다 검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활수준이 우리보다 높은 것은 이들 국민이 누리는 공공재의 수준과 품질이 높기 때문이다.

 잘 정비된 사회 기반 시설, 우수한 공교육 시스템, 깨끗한 환경과 잘 유지되는 공공질서, 각종 사회제도 등이 그들의 실질 생활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효과적인 긴급구난 시스템이 존재한다면 대부분의 국민은 직접 혜택을 보지 않지만 양질의 긴급구난 서비스가 항상 생활 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민의 삶의 질과 생활 안전은 향상될 것이다.

 잘 정비된 도로 통신망과 대중교통 시스템, 생활편의 시설도 온 국민이 공동으로 혜택을 누리는 공공재다. 이런 인프라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생활의 편리함과 복지수준은 높아진다.

 긴급구난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이 살다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실직, 재해, 질병, 노후 생활불안 등 각종 위협과 걱정에 대해서도 안전망을 갖춘다면 국민들의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이런 사회안전망과 같은 공공재야말로 적은 비용으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보편적 복지 상품이다.

 이러한 사회안전망은 나누어 주기식 복지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무상 급식 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열악한 학교 시설을 개선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바로 나누어 주기식 복지의 문제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개선된 학교 시설은 모든 학생이 공동으로 그 혜택을 누릴 뿐 아니라 한 번의 지출로 수십 년간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개선하는 효과를 낼 것이다.

 무상으로 학생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계속해서 반복되어야 하는 지출일 뿐 아니라 그야말로 먹고 마는 혜택이다. 더구나 매년 무한정 반복되어야 하는 무상급식 예산의 현재 가치를 환산해보면 최고 시설의 학교를 여러 개 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 교육을 시키고도 남을 돈이다.

 나누어 주는 복지는 설탕물이지만 공공재에 대한 투자는 일자리와 소득 창출의 기반이 되는 인프라가 된다.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임승차와 같이 개개인에게 사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복지제도는 그 혜택을 받는 사람에게는 권리가 된다.

 복지혜택이 국민 개개인의 권리가 되면 이를 줄이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고통과 저항을 초래하게 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국가 재정위기로 가게 된다. 지금의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스, 아일랜드가 그 증거다.

 복지 혜택을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동 소비가 가능한 안전망 형태로 공급하는 것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장래 경제위기나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복지 혜택의 변경이 불가피할 때 보다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런 점에서 ‘70% 복지’, ‘100% 보편적 복지’와 같이 국민의 몇 퍼센트가 혜택을 보는가를 놓고 진행되는 요즘 정치권의 복지 퍼주기 경쟁은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얼마나 많이 나누어 주는가를 놓고 싸우는 무책임한 포퓰리즘일 뿐이다. 소수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 다수에게 나누어 주는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먹고살 만한 사람들까지 보편적 복지의 이름으로 세금을 나누어 주는 것은 복지가 아니다.

 퍼주기식 복지(welfare)를 통한 일시적인 육체적 안락보다는 갑작스러운 사고, 질병, 실직과 노후 생활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오는 마음의 불안을 해소해주는 생활안전보장(security)이 더 친서민적이고 비용 효과적이고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보편적 복지정책이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