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그들만의 전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윈스턴 처칠이 야당 당수이던 1951년 초, 동료 의원들에게 이런 얘길 했다. “지금 한국전쟁이 터져 다행이지 뭔가. 십중팔구 싸울 수밖에 없는데 내가 총리였다면 전쟁광(狂) 소릴 듣지 않았겠나. 하마터면 우리 젊은이들을 지구 반대편 전장에 보내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할 뻔했어. 노친네가 잘 봐준 게지. 아, 그 전지전능한 하느님 말일세.” 불굴의 영웅 처칠조차 제 손으로 참전 결정을 내리는 건 달갑지 않았던 게다.

 전쟁을, 그에 따른 희생을 반길 국민은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역대 미국 대선에서 ‘평화’가 필승 카드였던 것도 그래서다.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이 될 게 뻔한데도 다들 전쟁 반대를 외쳤다. 우드로 윌슨은 1916년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건 덕분에 재선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24년 뒤 프랭클린 루스벨트 역시 똑같은 공약으로 3선 대통령이 됐다. 얼마 안 가 둘 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포화 속으로 미국을 밀어 넣고 말았지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전쟁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인 것도 당연하다. 이들 전쟁은 명분도, 비전도 없는 데다 불공정하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바뀐 요즘, 대부분 미국 국민은 전장에서 피는커녕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단 것이다. 상·하원 의원 자녀 중 군 입대자는 불과 2%뿐. 명문 프린스턴대만 봐도 베트남전 땐 졸업생 중 과반수가 입대했는데 두 개의 전쟁이 진행 중인 2006년엔 단 9명만 참전했다. 빈민층뿐 아니라 특권층까지 참전의 희생을 나눠야 했다면 이들 전쟁은 애당초 시작도 안 됐을 거란 지적이다(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징병제인 우리나라도 병역 문제에서 ‘공정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도, 총리도, 주요 장관들도 하나같이 군 미필자다. 북한이 연평도를 불바다로 만들어 놨는데도 확전 자제에만 급급했던 비굴함. 혹시 ‘병역 미필 정권’의 콤플렉스 탓은 아니었을까. 군대 간 아들·애인 걱정에 요새 숱한 부모와 ‘고무신 카페’ 회원들은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그들 앞에서 떳떳하게 불사항전을 외칠 처지가 아니잖나 말이다. 그러니 이 딜레마를 어쩔까. 북한의 도발에 계속 당할 수도 없고, 국민들이 원치 않는 전쟁을 벌일 수도 없고….

신예리 논설위원

▶분수대 기사 리스트
▶한·영 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