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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군대 가고 남자 애 낳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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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

어금니 몽땅 뽑기, 어깨뼈 탈골 시키기, 손가락 자르기, 정신병원 가기. ‘자해 공갈단’ 얘기가 아니다. 군대 면제를 위한 속임수들이다. 그들을 탓하기에 앞서 얼마나 군대가 가기 싫었으면 그랬을까 싶다. 군 가산점제가 부활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우리나라에서 병역의무로서의 군대는 남자만 간다. 애는 여자만 낳는다. 당연히 군대와 출산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군 가산점’ 얘기만 나오면 남녀가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운다. ‘애 안 낳아봤으면 말을 마라’ ‘군대도 못 가본 너희들이 뭘 알겠느냐’ 하면서. 괜한 싸움이다. 둘 다 해보지도 못하고 어찌 비교하겠다고.

 나는 군대는 못 가봤지만 애는 둘 낳아봤다. 남자들이 군대 얘기할 때 여자들이 출산을 들먹이는 이유. 단순히 열 달 동안의 고통을 말함이 아니다. 출산은, 애를 낳자마자 남에게 넘겨주는 대리모가 아닌 이상 적어도 3, 4년은 육아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 아빠의 육아 책임이야 아직도 ‘도와주는’ 수준이지 않은가.

 애는 못 낳아봤지만 군대는 갔다 온 남자 얘기를 들어봤다. 출산은 선택인 반면 군대는 의무이고. 애는 낳고 싶을 때 낳을 수 있지만 군대는 신체적으로 최고인 나이에 강제로 징집되고. 고통을 잊을 만큼 창조적인 탄생의 보람을 가져다주는 출산에 비해, 사회에 나오면 별 쓸모도 없는 군사교육과 기강 세우기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인격적인 모독이나 폭력 등이 난무한 군대는,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남자가 더 고통스럽단다. 그래서 ‘군 가산점제’는 부활되어야 한단다.

 듣고 보니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고통을 폄하해서는 안 될 만큼 둘 다 보상받을 가치가 있는 것 같다. 해결책으로 ‘여자도 군대 가고 남자도 애 낳고’ 하면 제일 공평하긴 하겠다. 하지만 신체적인 차이나 여자용 군 시설물의 부족 등으로 여자가 군대 가기엔 지금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고, 최첨단 과학이라고 해도 남자가 임신하는 일도 당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입대를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군 복무에 열중했던 남자들에게는 ‘군 가산점’을 주자. 출산한 후 육아 때문에 애써 쌓아놓은 경력이 단절될 위기에 놓인 여자들을 위해서는 아기 아빠와 일정 기간 양육을 공동 해결할 수 있도록 ‘남자 육아휴직 의무화’를 도입하자. 그로 인해 생기는 회사의 손실은 물론 국가에서 감당해야 맞다. 그렇게 되어야 ‘애 보는 김에 계속 집에서 애나 보라’는 회사도 없어지고 ‘육아휴직 쓰는 남자는 강심장’이란 말도 사라지지 않겠는가.

 군대는 사회적인 일이지만 출산은 개인적인 일이라고? 그런 안일한 생각이 바로 ‘저출산’의 주범이다. 높아지는 여자들의 고시 합격률.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그 똑똑한 여자들도 애만 낳아봐라. 다 어디론가 꽁꽁 숨어버린다. 믿고 맡길 곳이 없어서 집에서 애 키우고 있단다. 군 가산점제 부활시키려면 남자에게 육아휴직을 의무화시켜라. 당장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군대가 필요하고, 미래 국력을 키우기 위해선 인재를 낳고 키워야 한다. ‘군 가산점제’를 샘내던 여자들. 아기 아빠와 교대로 같이 키울 희망을 갖고 애를 낳기 시작하면 ‘저출산’ 문제 따위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까.

엄을순 문화미래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