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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북핵 미·중·일 입장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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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북한 핵 문제가 기로에 섰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9일 "북한은 주권국가"라며 마지막 미소를 보냈다. 북한이 라이스의 미소에 화답할 경우 북핵 문제는 6자회담 재개를 향해 움직일 공산이 크다. 그러나 평양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한반도에는 일대 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실타래처럼 얽힌 미국.중국.일본의 속내를 살펴봤다.

미국 "핵실험 해도 대북 공격 없을 것"
미 한반도 안보 담당 관계자 설명

미국 행정부의 한반도 안보 담당 관계자는 10일 "북한은 지난해 6자회담에서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 사례를 공공연히 거론하며 자신들도 파키스탄처럼 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며 "북한의 핵실험 강행 가능성이 크다"고 본지에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당시 '파키스탄은 미국의 제재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감행했지만 미국으로부터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몇 년 만에 동맹 관계까지 맺었다'고 발언했다"며 "이는 북한이 파키스탄처럼 큰 제재를 받지 않고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의 속내를 명확히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파키스탄과 달리 절대로 용인할 수 없는 것인데도 북한은 큰 착각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관측하지만 북한은 이 같은 착각에 힘입어 결국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10일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준비 징후를 포착.확인한 바 없으며 (그런 징후를 보도한) 뉴욕 타임스 기사는 미국인 4분의 3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 "미 국무부나 국방부는 그 기사가 사실을 보도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길주 지역에 의심스러운 갱도가 파였고 그 속에 콘크리트로 보이는 물질이 여러 겹 채워지는 모습이 위성으로 관측됐다"며 "이 같은 정보(핵무기 보유 선언.군축회담 요구)에 북한의 일련의 발언을 결합해 유추해 보면 핵실험을 준비 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라고 했다.

그는 한.미 정보 공유와 관련해 "미국의 (북핵 관련) 대북 위성정보는 있는 그대로 한국에 실시간으로 제공된다"며 북핵에 관한 한 거의 완벽한 수준의 정보 공유가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동일한 위성 정보에 대해 미국은 최악의 가능성을 전제로 대비하는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가능성에 중점을 둔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 해도 미국은 군사행동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신 미국은 북한을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은 물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통해 핵확산 저지와 북한산 마약.위조지폐의 거래 등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 경우 한국의 입장이 중요하다. 한국이 유화적인 입장을 변경해 미국의 대북 제재에 공조할 경우 북핵을 저지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한국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는 솔직히 알 수 없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일본, 대북 안보리 의장 성명 추진

일본 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해 6자회담을 우선시한다. 그러나 여의치 않으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 성명, 안보리 제재 논의를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외적으론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은 극히 낮아졌다"(외무성 간부)고 판단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우선 안보리 의장성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일본은 8월부터 1년간 안보리 의장국을 맡게 된다. 곧바로 안보리에 회부할 경우 한국은 물론 안보리 거부권을 가진 중국.러시아가 반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외상은 10일 중의원에서 "안보리를 열면 곧바로 경제 제재나 군사적 제재를 취할 수 있지만 안보리가 북한에 대해 빨리 6자회담에 복귀하라고 의사표시를 하는 것도 선택 방안"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북핵 문제를 안보리로 넘기려 하는 데는 납치 문제도 얽혀 있다. 지난해 말 이후 납치 문제가 전혀 진척이 없어 "대북 경제 제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중국은 중국식으로 북한 설득하고 있다"
중 외교 고위 관계자

"중국은 중국식으로 북한을 집중 설득하고 있다."

서울에 주재하는 중국의 한 고위 외교소식통이 1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근 북핵 사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밝혔다. 익명을 전제로 해서다.

그는 우선 현 상황의 최대 걸림돌로 북.미 간의 불신을 꼽았다.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완전히 포기하라며 평화적 핵 활동마저 막고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막상 핵을 포기했을 때 미국이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떡하느냐고 걱정이다"며 "2400만 명 인구의 북한이 초강대국 미국 앞에서 의심을 못 버리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이어 "북한이 미국에서 가장 받고 싶어하는 약속은 체제보장과 수교"라며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핵 포기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나 인권 문제 등이 함께 풀려야 비로소 수교라는 단계까지 접근할 수 있다는 게 북한의 고민"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면서 제재를 언급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문화재에도 유형문화재와 무형문화재가 있듯이 제재에도 유형의 것만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카드로 활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방북 자체는 확정된 상태지만 아무래도 국제사회가 지켜보고 있는 만큼 6자회담과 관련해 뭔가 고무적인 결과물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북 시기에 대해서는 "6자회담 이전에 방북할 수도 있고, 후 주석이 방북하고 1~2주가 지난 뒤 6자회담 재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양측 모두 편안한 시기를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일화도 소개했다. 2000년 김 위원장이 북한 주재 중국대사관 사람들을 자신의 별장으로 초청해 송년파티를 하던 중 갑자기 5분여 동안 전기가 나갔다고 한다. 당시 김 위원장은 "미국의 봉쇄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김 위원장 별장에조차 전기를 대지 못하는 북한이 8000여 개의 폐연료봉을 제대로 재처리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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