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커리큘럼, 시범유치원 노크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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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부터 2011학년도 유치원생 모집이 시작된다. 미취학 아동을 둔 학부모의 마음이 바빠지는 시기다. 그런데 고만고만한 프로그램이 전부일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수준별 수업을 진행하는 곳, 책상과 의자 없이 숲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는 곳 등 이색 커리큘럼을 진행하는 유치원도 많다.

놀이 프로젝트로 과제집착력 향상

10일 오전 서울 문성 유치원. 수업이 시작된지 30분이나 지났지만 교실 분위기는 쉬는 시간처럼 시끌벅적하다. 유토(油土)로 물길을 만드는 아이, 돌멩이로 물고기를 만드는 아이, 커다란 수조에 물을 부어 넣는 아이, 삐뚤삐뚤한 글씨로 편지를 쓰는 아이 등 각양각색이다. 바다 속 공간을 꾸미던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김진호(7)군이 만든 물고기가 완성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겁고 커다란 물고기가 바다에 살 수 있을까?” 안상현(7)군이 갸우뚱했다. 조개껍데기, 낙엽, 아크릴판 등으로 바다생물을 만들던 아이들이 고민에 빠졌다. 이은혜 교사가 힌트를 준다. “돌멩이보다 좀 더 가벼운 재료를 이용해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이 말을 들은 이지원(7)양이 자신의 손바닥에 있던 조개껍데기를 내밀어 보인다.

이 곳에서는 이탈리아의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에 기반을 둔 교육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흥미에 따라 하고 싶은 프로젝트(활동)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방식이다. 모든 수업은 직접 만지고 느끼고 들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교과서나 선행학습은 필요 없다. 최완영 원장은 “스스로 과제를 정하고 문제를 해결해보는 놀이 프로젝트가 최대 4개 이상 정기적으로 진행된다”며 “한 시간 동안 2개 이상의 프로젝트에 동시에 참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학습한 내용을 사진 찍고 리포트로 작성한다. 교사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한 반에 최소 2명 이상의 교사를 배정해 아이들의 행동을 다방면으로 기록, 학부모에게 제공한다. 안선영 원감은 “교사의 역할은 반의 일원이 돼 아이들을 깊이 관찰하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라며 “과제집착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것이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대학강의식…사물함 이용 영역별 수업

서울 의명유치원에서는 원생이 교실을 옮겨 다니며 영역별 수업을 받는다. 복도의 사물함을 이용하며 대학강의처럼 수업을 받는 것. 이 유치원은 영어수업이 다른 곳과 비교해 적다. 그런데도 창의력을 강조하는 체계적인 교육방식 때문에 신입 원생 접수기간 중엔 학부모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다양한 생태체험을 표방하는 자연유치원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유아기엔 사고를 키우는 학습강의 대신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 놀아야 한다는 교육철학에 동감하는 학부모가 늘면서 수가 급증하고 있다. 독일식 교육제도에서 따온 숲유치원은 현재 산림청 산하 전국 국유림운영소에 개설된 곳만 21곳에 이른다. 서울에선 송파구청이 설립한 구립 어린이집이 올해 5월부터 종일반 숲유치원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서울 경동유치원도 인근의 서울숲을 이용한 숲유치원 프로그램을 진행중이다. 원생들은 유치원에 오면 책상 앞 의자에 앉는 대신 인근의 숲 속에서 나뭇잎을 주워 케이크를 만들고 마음껏 뛰어 놀며 하루를 보낸다.

국가에서 시범유치원으로 인증한 곳도 살펴볼만하다. 유아의 창의성을 향상시키는 혁신적 수업방식을 도입한 곳을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해 후원한다.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베네딕도 유치원은 가톨릭재단기관으로 수녀가 주축이 돼 운영한다. 몬테소리교육을 기본으로 설립 때부터 유기농 식단을 고수해 유아들의 건강을 신경 쓰는 학부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독특한 생태교육활동프로그램으로 2010년 서울시교육청이 지정한 시범유치원에 포함됐다.

서울 양천구에 위치한 샘터유치원은 우리나라 전통놀이와 노래를 특색 있게 가르치는 프로그램으로 시범유치원에 선정됐다. 서울시교육청 유아교육담당 김신영 장학관은 “최근엔 자연체험과 창의력 향상을 중심과제로 연구하는 유치원이 크게 증가했다”며 “국공립 유치원에서도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설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유치원을 선택할 때는 국가기관의 정식 인증을 받았는지 여부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다. 김 장학관은 “흔히 영어유치원이라고 잘못 불리는 유아영어학원은 교과부의 인허가를 받는 정식 유치원과 다르다”며 “만 5세 전에는 학습지식을 쌓기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마음껏 뛰어 노는 것이 성장에 훨씬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서울 문성유치원 어린이들이 이은혜 교사와 함께 바다 공간만들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지은·송보명 기자 ichthys@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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