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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밥과 땀과 노동을 노래한 시편 … 얼추 100년, 138명의 320편 추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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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울과 노동시
서울과 노동시
기획위원회 엮음
실천문학
736쪽, 3만8000원

살인적인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1970년 분신한 청계천 봉제 공장 노동자 전태일의 40주기(11월 13일)에 맞춰 만들어진 앤솔로지(시선집)다. 평론가 고명철·고봉준·박수연·오창은·이성혁씨, 시인 손택수씨 등이 기획위원으로 참여했다. 20세기 초부터 2000년대까지 138명 시인의 320여 편을 추려 실었다.

 얼핏 서울이라는 공간과 노동시라는 ‘목적시’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성혁씨에 따르면 노동시는 1980년대 들어 구체화된 하나의 장르 개념으로,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렇게 따지면 190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붕 떠버린다. 하지만 이씨는 사회주의 이념을 좇던 1920년대 ‘프로시’도 기층민의 입장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노동시와 다를 게 없다고 본다. 노동시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무엇보다 서울이 본질적으로 자본과 노동의 교차적 집약지(평론가 유성호)라는 점에서 ‘서울+노동시’는 유효한 기획이 된다. 선집은 1900∼50년대, 60∼70년대, 80∼2000년대 등 시대순으로 3개 부로 나뉜다. 2부 해설을 쓴 박수연씨는 60∼70년대 노동시는 강력한 반공 이데올로기에 따른 억압 때문에 수가 적고 고통을 야기하는 근원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분석한다. 또 아직 박노해·박영근같은 노동자 시인이 출현하기 전이다. 직업적인 시인에 의해 노동시가 주로 씌여졌다.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김수영의 ‘거대한 뿌리’ 등이 포함된다. ‘서울’과 ‘노동’이 배경으로 깔리는 경우가 많다.

 역시 본격적인 노동자 시인, 노동시가 생겨나는 80년대 이후, 3부의 비중이 가장 크다. 책의 절반 이상이 할애돼 있다. 하지만 수록된 시들의 스펙트럼은 다채롭다. 노동 현실, 서울의 실상이 더이상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을만큼 복잡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사건이 생생하고 충격적인 박노해의 ‘손 무덤’이 실렸는가 하면 서울 변두리의 착잡한 삶을 유머러스하고 세련되게 그려낸 권혁웅의 ‘마징가 계보학’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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