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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진 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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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할리우드의 ‘톱 스타일리스트’인 진 양(42·한국명 양진영)을 만나는 데는 꼬박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만 해도 그녀가 스타일링을 맡은 배우들이 출연한 영화가 줄줄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레지던트 이블4’의 밀라 요요비치, ‘아메리칸’의 조지 클루니, ‘소셜 네트워크’의 앤드루 가필드와 제시 아이젠버그까지. 이들이 영화 개봉에 맞춰 대중 앞에 나서야 하는 중요한 순간마다 그 스타일을 책임졌으니 바빠도 보통 바쁜 게 아닐 터였다.

 만남을 가진 날에도, 그녀는 바빴다. 이미 새벽 1시에 일어나 유럽 측과 전화와 e-메일로 업무를 처리한 뒤였다. 몇 시간 후엔 ‘석호필’로 유명한 배우 웬트워스 밀러의 중국 프레스 투어를 위한 피팅이 잡혀 있었고, 이어 TV쇼 ‘글리’(Glee) 로 유명한 다이애나 애그런과 화보 촬영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래도 그녀에겐 긍정적 에너지가 넘쳤다. 동석한 자신의 전속 홍보 담당자에겐 ‘원피스가 너무 귀엽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사진기자에겐 ‘이런 앵글은 생각지도 못했었다’며 감탄을 해댔다.

글=LA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사진=LA중앙일보 김상진 기자

시작부터 분위기가 좋아 정말 궁금했던 한 가지를 먼저 물었다.

● ‘피플’ 등 유명 잡지들에 소개된 걸 보니 일당이 평균 3000달러라던데요.

 “하하. 가끔은 더 많이도, 가끔은 더 적게도 받아요. 일에 따라 따르죠.”

● 할리우드 스타들의 스타일리스트라는 게 도대체 어떤 직업인가요.

 “기본적으로 스타들에게 ‘옷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영화 시사회나 레드카펫, 기자회견, 해외 홍보활동, 개인적인 이벤트 등에 나갈 때 스타일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또 스타들 대신 쇼핑을 해 주기도 해요. 개인 옷장을 트렌디하게 채워주는 일이죠. 워낙 유명인사들이다 보니 마음대로 옷 한 벌 사러 다닐 수도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집을 리모델링해 주고, 영양사가 식생활을 챙겨주고, 트레이너가 몸매 관리를 도와주는 것과 같다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제 스스로를 ‘스타’라는 기업의 ‘마케팅 부서’ 인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함께 일하는 스타들의 연수입은 수천만 달러를 가뿐히 넘어섭니다. 웬만한 기업과 맞먹죠. 미국·유럽·아시아·아프리카까지 누비며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일하는 이 스타들이 좀 더 좋은, 경쟁력 있는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설 수 있도록 이미지를 창조해 주는 게 ‘마케터’로서의 제 일입니다.”

 # 그녀가 상대하는 스타들은 특 A급들뿐이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샌드라 불럭, 캐머런 디아즈 등과는 그들이 지금과 같은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일해 왔던 사이다.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스 부부, 키아누 리브스, 크리스천 베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과는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함께하고 있다. 이들이 ‘보그’ ‘GQ’ ‘엘르’ ‘배니티 페어’ 등에서 화보 촬영을 할 때도 그녀가 이들의 스타일을 결정해 카메라 앞에 세운다.

● 함께 일한 배우들이 모두 멋내지 않은 듯하면서도 인상적인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누군가가 일부러 꾸민 느낌을 최대한 없애는 거죠. 뭔가 달라보이긴 하는데 ‘헤어 스타일을 바꿨나’ 혹은 ‘살이 좀 빠졌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저만의 노하우입니다. 스타들도 옷을 어떻게 입히느냐에 따라 대중 앞에 설 때의 자신감이나 태도가 바뀌곤 해요. 외양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동까지 바꿀 수 있는 스타일을 창조해주는 게 중요하단 생각입니다.”

● 유명 스타들은 신경질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라 일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절대, 절대, 절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오해예요. 배우들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모두 겸손하고 친절하죠. 저만해도 진실되지 못하고 오만한 사람들과는 아무리 잘나가도 절대 같이 일 못해요.”

● 함께 일했던 스타들과의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많을 텐데.

 “글쎄요…. 한 가지 얘기해 드릴 수 있는 건 할리우드 스타들도 신체 사이즈에 대한 거짓말을 자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여자들은 실제보다 조금씩 사이즈를 줄여 말해요. 남자들은 자기 구두 사이즈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요.”

 # 화제는 어린 시절 얘기로 옮겨 갔다. 어린 시절 그녀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1966년 빈손으로 이민 온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해 가며 3남매를 뒷바라지했다. 밤낮없이 일해 몸이 상할지언정 3남매는 미국 최고의 학교에서 공부를 시켰다. 진 양도 보스턴의 명문 보딩스쿨인 콩코드 아카데미를 다녔다. 대학도 명문 여대인 스크립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진 양에게 그래서 어머니는 하늘이다. 어머니는 재봉틀 5개로 봉제공장을 시작해 억세게 사업을 키워나갔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재봉틀과 기계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드레스와 청바지들을 보고 자랐던 진 양에게 패션 업계 입문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 어린 시절 얘기 좀 들려주세요.

 “너무나 가난했던 기억밖에 없어요. 어머니는 낮엔 봉제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엔 양로병원에 가서 또 일하고, 거기다 영어 배우신다고 학교까지 다니면서 어린 저희 남매를 키우셨어요. 둘째인 저를 낳으셨을 때도 병원에 갓난아기를 둔 채 2시간 만에 퇴원해 다시 일하시다 몸이 견디지 못해 쓰러지셨대요. 아주 어렸을 때 푹푹 찌는 봉제공장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줄곧 서서 일하시던 어머니 옆에서 장난감 하나 없이 놀던 게 생각나요. 기저귀도 제대로 못 차고 구세군에서 얻어 온 옷을 입고 자랐죠. 그래도 어머니는 30년 동안 봉제공장을 하며 힘들게 모은 돈을 저희 교육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쓰셨어요. 주변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그랬지만, 어머니는 미국 오실 때 ‘돈 벌어 애들만큼은 맘껏 공부시키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게 하자’는 생각이었다면서 항상 굳건하셨지요. 봉제공장이 저희 어머니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준 셈이죠.”

● 딸이 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 할 때 반대도 심했을 법합니다.

 “전혀 아니에요. 너희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좋다며 응원해 주셨어요. 저희 세 남매가 모두 엔터테인먼트 업계로 진출했어요. 오빠는 영화 쪽에서, 남동생은 음반업계에서 일하고 있죠. 남들처럼 의사·변호사만 원하실 수도 있었는데…. 제가 갑자기 패션 일을 하겠다고 할 때도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셨어요. 오히려 남매가 우애 있게 서로 끌어주고 도와줄 수 있겠다고 좋아하셨는걸요.”

●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할 수밖에 없네요.

진 양과 어머니. 가운데는 케이티 홈스.

“세 남매 모두에게 어머니가 최우선이에요. 95년에 봉제공장 정리하시고 지금은 LA 한인타운에서 전통떡집을 운영하고 계신데, 아직도 저희 일이라면 모든 일 제치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세요.”

● 쌍둥이 딸을 키우는 데도 어머니의 영향이 있나요?

 “저희 어머니께서 그러셨듯 최고의 교육을 시켜주고 싶어요. 어떤 분야 일을 하건 좋은 교육환경과 다양한 학문적 소양을 갖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다만 아무리 2시간밖에 못 자고 일하더라도 딸들이 절 필요로 할 땐 꼭 옆에 있어주는 엄마이고 싶어요. 쉽진 않더라고요. 쏟아지는 일 관련 e-메일 처리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학부모들이 사소한 일들로 계속 ‘전체 답장’ e-메일을 보내대면 가끔은 미칠 지경이에요. 하하.”

 #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자 가족의 절절한 사연들이 쏟아져 나왔다. 진 양의 어머니는 1981년 그녀의 친아버지와 헤어졌다. 85년 재혼해 힘든 이민 생활의 버팀목이 돼 줬던 새 아버지도 지난 9월 세상을 떠났다. 올해까지만 두 분이 함께 전통떡집을 운영하고 내년에는 은퇴해 여행만 다니며 살겠다고 자식들과 약속까지 했던 터라 남은 가족의 아픔은 더욱 컸다. 요새 그녀가 어머니를 더욱 끔찍하게 모시는 이유다. 진 양의 친아버지는 미국 내 대표적 통일운동 진보단체인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재미본부 상임의장 양은식 박사다. 76년 북한에 남겨둔 홀어머니를 찾기 위해 방북한 뒤로 한국 정부의 입국 불허 대상자가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어릴 적부터 진 양은 아버지의 영향을 퍽 많이 받았었다고 했다.

●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원래는 정치가가 되고 싶었어요. 유엔에서도 일하고 싶었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한국의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친아버지 영향이죠. 평생을 통일을 위해 사신 분이니까요. 어머니 고향도 북한인데 어린 시절 쌍둥이 동생과 헤어진 뒤 평생을 그리워하며 사셨대요. 그래서 한국의 정세와 국제정치에 대해 자연스레 흥미가 생겼습니다. 정치계에 뛰어들 생각으로 대학 졸업 후 로펌에서 2년간 일해봤는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 그래서 택한 게 패션의 길이었나요.

 “저보다 먼저 제 길을 찾아 음반 프로듀서 일을 하고 있던 남동생이 추천하더라고요. 어려서부터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패션 잡지를 주워다 즐겨 봤으니 재미있게 잘할 수 있을 것이란 말에 힘을 얻었죠. 처음엔 베벌리힐스의 백화점에 취직했어요. 바이어가 될 생각이었죠. 그냥 신나게 일했을 뿐인데 2주차부터 주급을 올려주더군요. 얼마 안 가 패션 잡지사 ‘디투어’에서 에디터 자리를 제안했어요. 이때부터 배우들과 일을 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이름을 알려 96년부터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 나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 지난해 톰 크루즈의 부인인 배우 케이티 홈스와 두 사람의 이름을 딴 의류 브랜드 ‘홈스&양’(Holmes&Yang)도 론칭했지요.

 “케이티는 제 베스트 프렌드예요. 우리 둘 다 ‘워킹 맘’이고요.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끊임없이 자신을 꾸미기도 해야 하는 여성들을 위한 베이직 아이템들로 이뤄진 라인을 만들고 싶었어요. 쉽고 편하고 스마트한 옷이라고 할까요? 20년 전에도, 20년 후에도 입을 수 있을 옷, 내 아이들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옷, 디너 파티에도 어울리고 일하러 갈 때, 놀러 갈 때도 입을 만한 옷을 만들려 했죠. 패셔너블한 클래식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아직 베벌리힐스와 뉴욕·시카고 등 4곳에만 숍이 있어요. 시작 단계이지만, 론칭 첫 주에 3개 스타일이 완판되는 등 반응이 좋습니다.”

 # 한국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재미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녀는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랐고, 한국에 가 본 기억도 까마득하기만 하지만 언제나 한국을 마음에 품고 자랐다고 했다. 한국말이 유창하지 못한 게 너무도 큰 부끄러움이라며 쑥스러워하기도 했다. 대신 일을 하면서도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한국 배우들,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영화들은 빼놓지 않고 주시하고 있단다. 아이들에게는 원더걸스의 음악을 들려준다. 유명 패션지의 한국판들도 매달 빼놓지 않고 구해 본단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세계 무대에서 활약할 한국 배우들과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불러만 준다면 기꺼이 일하고 싶어요. ‘홈스&양’이 해외 시장에 진출한다면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곳도 한국이고요. 장기적으로는 베라 왕이나 랠프 로렌처럼 저만의 패션 왕국을 만들고 싶어요. 정치요? 나이가 들면 정말 할지도 모르죠. 할리우드 사람들끼리 하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엔터테인먼트의 중심 할리우드와 정치의 중심 워싱턴DC는 많이 닮아 있다고요. 다만 워싱턴 DC 사람들이 ‘조금 덜 예쁘고 덜 잘생겼다’뿐이죠. 연기하면서 정치하는 배우도 많으니, 스타일링이나 디자인하면서 정치를 못할 이유도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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