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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석 칼럼] 귀신 담은 이갑철 사진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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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우석
문화평론가

아동문학가 마해송(1905~66) 하면 기억하는 이 많지 않겠지만 내겐 무엇보다 『아름다운 새벽』의 저자다. 문학평론가 김현(1942~90)이 “신문화 이후 몇 안 되게 간결한 문장”이라고 극찬한 데 힘입어 10년 전 재출간된 책이다. 본래 ‘사상계’ 연재 글인데, 아무리 봐도 문장이 특별하진 않다. 눈여겨볼 건 옛 민간신앙에 대한 증언이다. 저자의 고향인 1910년대 황해도 지방 습속에 대한 디테일은 최명희 대하소설 『혼불』에 견줄만하다. 이를 테면 당시엔 “앉거나 서거나 온통 귀신들에게 부딪치게 될” 형편이었다.

 집안만도 대감님으로 불리는 각종 신으로 가득했다. 마루 들보엔 성주대감, 장독대엔 지신(地神) 터주대감이 살았다. 안방 아랫목의 고리짝은 제석신, 혹은 단군이 있는 곳이다. 뿐인가? 부엌에는 불을 맡은 조왕신이, 뒷간(화장실)엔 측신이 계셨다. 소년 마해송의 어머니는 음력 초하루와 보름날 어김없이 돼지 앞다리로 상을 차려 고사 지냈다.

 사진가 이갑철(51)의 뛰어난 사진집 『충돌과 반동』을 볼 때면 마해송부터 생각난다. 전통의 힘이 그만큼 세며, 요즘 대명천지에도 시퍼렇게 살아있음을 보여준다. 놀랍게도 한국의 귀신을 담고 있는 『충돌과 반동』은 실은 올 봄에 출간됐다.

 소개할 타이밍을 놓친 이후 기회만 엿봐왔지만, 그 전후 사진집 가치는 더욱 커졌다. 2002년 금호미술관 첫 전시 때는 뭔가 사건은 사건인데, 이게 뭔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가치를 알아본 건 일본이다. 이듬해 사가미하라 아시아 사진가상을 그에게 줬고, 올해는 훌륭한 사진집으로 다시 묶여 나왔다.

 이젠 누구나 말한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확장이자, 사진 100년사의 성취라고…. 의문부터 들 것이다. 귀신을 어떻게 포착했단 말인가? 한국의 원시성을 간직한 신기(神氣), 혹은 넋을 어찌 포착했을까? 이갑철이 카메라를 들이댄 건 성철 스님 다비장, 풍어제 등 한국의 일상적 풍광이다.

 절묘한 건 그 이미지들이 섬뜩한 그 무엇, 강렬한 힘을 발산한다는 점이다. 해인사 대웅전 지붕 꼭대기에 올라 타 기와를 수리하는 스님을 포착한 ‘해탈을 꿈꾸며’가 그렇다. 분명 절간 보수 작업인데, 평론가 박영택의 말대로 “보는 순간 그대로 다가와 육박하는 어떤 힘”이 느껴진다. 초현실적이면서도 리얼한 맛이고, 와락 감전된 기분이다. 확실히 이갑철 작업은 사진가 김수남(1949~2006)의 다큐멘터리 사진과 비슷하면서도 무척이나 다르다.

 그도 수많은 굿 현장을 찍었고, 그 자체로 훌륭한 기록이지만 귀신을 담아내진 못했다.

 이갑철은 해냈다. 보통 광각렌즈를 구사한 그가 들이댔던 피사체에 마해송이 증언했던 1세기 전 샤머니즘의 실체가 묻어난다. 아쉬운 건 이게 사진동네 내부의 뉴스에 그친다는 점이다. 포털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와글와글하길 기대하는 건 너무 야무진 꿈일까?

 사족1. G20 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외국 정상들에게 줄 선물로 『충돌과 반동』이 딱이다. 고려해보시길. 사족2. 『아름다운 새벽』 뒷부분은 실은 저자의 가톨릭 개종 기록이다. 반면 우리 세대는 잃어버린 전통을 부분적으로나마 되찾고 있다. 그 점 다행이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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