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냘퍼 보인다구요? 시민들의 안전 우리가 지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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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일이요? 무시하고 막말에 욕설까지…쉽지만은 않죠.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듣기만 하면 피로가 다 풀린답니다.”

 소방의 날을 며칠 앞두고 천안소방서 여직원 10여 명이 회의실에 모여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불을 끄는 일부터 응급, 건축물 민원부서 직원까지 다 모였다.

 이미선(51)씨가 제일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는 천안소방서 여직원 모임인 정우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구조 구급부서의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이씨는 “천안 업무량이 타 서에 비해 굉장히 많아 야근하는 날이 많다. 천안이 도내 20%의 구급활동을 차지하고 있지만 구급대원 수는 거의 같다. 하루 평균 16건 출동, 한번 출동에 1시간 정도는 꼬박 소요되니 거의 쉴 틈이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천안소방서 여직원들이 소방의 날을 앞두고 모여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박하정·김보희·노지혜·안호진·최지영·최영미·오진숙·서명현·이미선·김윤남·이수미씨. [조영회 기자]


 구성119 안전센터 구급대원인 오진숙(31)씨는 “주취자나 병원을 이용하려는 단순 이송 신고가 많다. 이런 시민들 때문에 꼭 필요한 분들이 혜택을 못 받는다”고 아쉬운 심정도 밝혔다. “시민들은 119를 부르면 무조건 와서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머리만 아파도 부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도 했다. “열심히 해도 돌아오는 건 친절하지 못하다는 비난, 그리고 폭력과 욕설 등이 힘들게 만든다”며 착찹해 했다.

 화재진압 업무를 하는 최영미(22)씨는 1년3개월 동안 불을 끄는 업무를 맡고 있다. 지금까지 500여 건, 하루에 한 건 이상 화재현장에 출동한 것이다.

 진화활동 중 어떤 것이 어렵냐는 질문에 최씨는 “얼마 전 영성동의 지하노래방에 화재가 났을 때 한치 앞도 보이지 않고 연기만 자욱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옆에 있던 대다수의 직원들도 지하 화재 진압이 가장 어렵다며 동조했다.

 최지영(29)씨는 소방호수를 든 지 1년10개월. 얼마 전 고물상 화재가 발생해 무거운 공기통을 등에 맨 채 3시간 동안 불을 껐다. 그리고 불에 탄 고물을 다 들어내고 잔불을 정리했다. 가냘픈 여자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김보희(28)씨는 소방서의 CSI다. 화재조사를 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불이 어떻게 나게 됐는지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소방필증 발급을 하는 서명현(28)씨는 “책임지고 시공할 테니 허가 먼저 내달라”고 하는 부탁이 적잖이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만 원칙대로 한다. 그러면 “여자라 깐깐하다” 등 돌아오는 건 또 원망과 ‘욕’뿐.

 대원들은 “출동 시 불법 주·정차 때문에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신고도 하지 않고 쓰레기 소각하는 것도 문제”라는 등 시민들에게 여러 가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어려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민들의 작은 감동과 감사의 말이 보람으로 다가온다. 심폐소생술로 사람을 살린 일, 어린 아이가 다쳐 재빨리 치료해준 일이 기억 난다. 고맙다는 인사 한번에 피로는 싹 달아난다고 한다. 이들은 또 결혼하고 싶으면 소방관이 되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건냈다. 특히 구급차를 타라고 권한다. 작년 한해만 5쌍이 결혼을 했단다. 오랫동안 힘든 일을 함께 해 정이 붙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글=김정규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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