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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미 생활은 5년이 정년, 그 후엔 술·식품 공장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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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호 11면

전북 정읍시 정우면에 있는 농협 창고, 지난 3일 올 첫 추곡수매한 쌀을 농협 창고에 넣고 있다. 신인섭 기자

내 이름은 ‘남평벼’. 나이는 만 5세. ‘몸 상태’ 2급. 직업을 말하자면 일종의 공무원이다. 인간들은 우리를 ‘정부미’라고 부른다. 내가 사는 곳은 전북 정읍시 정우면 회룡리 샘골농협 창고다. 겉으로 보면 허름한 일반창고 같지만, 천장과 벽·문에 단열재가 시공되고 지붕엔 강제 환풍기를 단 나름 괜찮은 집이다. 한여름에도 실내 온도가 바깥 기온보다 4도 이상 낮아 에어컨 없이도 그럭저럭 지낼 만하다.

모자라도 남아도 골치, 3일 시작한 추곡수매 쌀의 일생

나는 2005년 늦여름 전북 정읍시 정우면 산북리 마을 최상규씨 논에서 태어났다. 그해 여름은 예년보다 비가 좀 많이 내리긴 했지만 태풍 피해 한 번 없이 평온한 해였다. 우리 창고엔 2007년, 2008년에 태어난 친구들도 있지만, 내가 최고참이다. 우리 종족들 사이에 ‘고참’은 좋은 말이 아니다. 인간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방치됐다는 뜻이다. 아참, 내 몸 위에 있는 동기는 인근 대서리 대북마을 박선배씨 논 출신의 ‘특급’ 판정을 받은 놈이다. 나야 2급 신분이니 덜 억울하다고 할 수 있다. 허리춤에 ‘특’자 도장을 받은 놈이 5년 동안 창고에서 썩어야 하는 꼴이라니….

우리 창고에 들어와 고참 퇴물이 되기 전에 신세를 고친 놈들도 있다. 이듬해 9월까지 ‘햅쌀’이란 명찰을 달고 식당이나 학교급식·군부대·교도소·사회복지단체 등으로 간 이들이다. 전입 2~3년차 중엔 북한으로 간 친구들도 있다. 사람들은 “북녘의 굶주린 동포들에게 주겠다”며 종종 우리 친구들을 북으로 보냈다.

나 같은 만 5년짜리 최고참은 고구마나 타피오카 같은 종족들과 함께 ‘주정(酒精)’ 즉 알코올 신세가 된 뒤 서민들이 마시는 ‘희석식 소주’가 되어 생을 마치는 게 운명이다. 개중엔 드물지만 고추장 원료나 쌀과자·막걸리·쌀가루로 변신해 팔려간 친구들도 있다. 아, 나름 외국물을 먹는 축도 있다. ‘찐쌀’로 변신해 아프리카 등 외국에 수출되는 녀석들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나도 이 자리를 내줘야 한다. 어두컴컴한 창고를 나와 인근 군산의 한 주정공장으로 실려가리라. 그래도 삶에 지친 서민들의 한을 달래주는 역할을 맡는다는 게 위안이 된다.

5년 전 가을 부푼 가슴을 안고 산북리 논에서 나올 때만 해도 내 신세가 이리 될 줄은 몰랐다. 난 우리 논의 대표주자였다. 논 한 마지기에서 생산되는 벼 40㎏들이 10포대 중 한 포대로 ‘정부 공공비축미 추곡수매 대회’에 선발돼 대한민국 정부에 차출됐다. 남은 친구들은 한 포대에 4만5000원으로 몸값을 치르고 새로운 주인 ‘농협’을 만났지만, 우리들은 5000원 이상 많은 5만50원을 받은 귀한 몸이었다. 주인님은 나를 팔고 받은 전표를 들고 기뻐했다.

나의 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해 11월 초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회룡리 공공미 비축 창고로 들어온 나와 내 동료는 지금껏 5년간 햇빛을 보지 못했다. 설상가상, 쥐와 벌레를 막는다며 1년이면 2~3차례 뿌려 대는 연막소독에 시달리기까지 해야 했다. 지금 내 몸값은 5년 전의 20% 가격인 ㎏당 280원까지 떨어졌다. 20㎏ 한 포대로 따진다면 한 끼 밥값에 불과한 5600원이다.

우리 논 출신 중 정부 추곡수매가 아닌 농협 수매로 간 동기들은 ‘짧지만 폼 나는 삶’을 살았다. 5년 전 40㎏ 한 포대에 우리 정부미보다 싼 4만5000원으로 팔려나간 그들이 처음 간 곳은 인근 정우면 수금리 미곡종합처리장(RPC:Dry Process Complex)이었다. 초대형 사일로에 들어가 12시간 동안 몸을 말린 뒤 최신식 자동 미곡처리 시스템으로 구성된 기계에 들어가 순식간에 옷을 벗었다. 일부는 ‘현미’팀으로, 또 일부는 ‘백미’팀으로 갈라졌다. ‘햇샘’ 또는 ‘고미고미(故米高味)’라는 이름의 20㎏짜리 포대에 담긴 뒤 트럭에 실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5분이었다. 5년 동안 옷 한 번 못 벗고 썩고 있는 내 신세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이 친구들은 최신식 처리 과정 중 인간을 만난 적이 없었다. 자동 도정기-자동 포장기-로봇팔-지게차가 순서대로 농협 현미·백미팀을 상대했다. 이 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왕겨 옷은 숯(탄화왕겨)으로 변신한 뒤, 거름을 대신해 고향 땅 논으로 돌아갔다. 현미팀까지 남았다가 마지막으로 떨어져 나간 쌀겨는 ‘현미유’와 ‘사료’로 변신한 뒤 각각 유명을 달리했다. 백미·현미팀은 브랜드 쌀로 변신, 농협 하나로마트나 시중 대형할인점을 통해 20㎏ 한 포대에 3만5000~3만8000원의 가격표를 붙이고 판매됐다. 그들은 이듬해 한 해 동안 인간의 식탁에 올라 존재의 의미를 다하고 모두 세상을 떴다.

정읍시 안에서 같이 자랐지만 좀 더 특별한 무리들도 있다. 구한말 동학 농민혁명의 발원지가 됐던 고부면 출신의 ‘호품벼’라는 친구들이다. 고부면은 옛날 바닷물이 드나들던 곳이었다고 한다. 덕분에 이 동네 친구들은 바닷물 속 천연 미네랄이 듬뿍 든 토양에서 자라났다. 다른 동네 벼들과는 달리 엄마 품속에서부터 ‘계약재배’라는 귀한 대우를 받으며 자랐다. 농약도 덜 먹어 ‘저농약’이라는 마크를 달았다. 이 친구들은 정읍시 대표 브랜드인 ‘단풍미인쌀’이라는 이름의 포대를 입고 20㎏ 한 포대당 4만3000원의 고가로 팔려나갔다. 물론 주로 부잣집 식탁에 올라 명예롭게 삶을 마쳤다.

인간들은 “역시 간척지 쌀이 맛이 있다”며 이 친구들을 유달리 좋아했다. 난? 묵은쌀, 고미(古米)라는 낙인이 찍혀 창고 속 퇴물이 되어가고 있다. 대체 누가 왜 나를 이 신세로 만들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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