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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등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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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금등지사(金縢之事)란 ‘오해가 없도록 고이 보관된 문서’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주나라 성왕이 숙부 주공에 대한 의심을 푸는 데 한 장의 문건이 큰 역할을 했다는 ‘서경(書經)’의 고사에서 비롯됐다.

 이인화의 소설 ‘영원한 제국’에서 금등지사는 ‘영조가 사도세자 살해를 후회하는 심경을 기록한 글’을 가리킨다. 정조는 사라진 금등지사를 비밀리에 찾아내 노론 벽파를 처단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 때문에 정조의 개혁 정치는 미완으로 끝난다는 내용이다. 최근 종영된 KBS-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도 이 설정을 그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 금등지사는 비밀 문서가 아니었다. 정조 17년(1793년) 5월 28일, 남인 출신의 영의정 채제공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재조사하고 책임자를 처단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이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는 역적’이라는 영조의 공식 입장과 반대되는 것이었으므로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채제공을 처벌하라는 여론이 들끓었고, 정조는 8월 8일 조정 백관을 모아놓고 공식 해명을 했다.

 내용인즉 채제공은 선왕 영조로부터 밀지를 받아 몰래 보관해 왔으며, 그 밀지는 영조의 후회와 함께 ‘사도세자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적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조는 조정의 의심을 풀기 위해 ‘피 묻은 적삼이여 피 묻은 적삼이여, 동(桐)이여 동이여, 누가 영원토록 금등으로 간수하겠는가. 나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바란다(血衫血衫, 桐兮桐兮, 誰是金藏千秋, 予懷歸來望思)’는 금등지사의 한 대목을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이나 드라마와는 달리 정조는 이 금등지사로 피바람을 일으키지 않았다. 대신 ‘지나간 일을 다시 거론할 생각이 없으니 대신 국정에 협조하라’며 반대파를 설득하는 데 이용했다. 이렇게 얻어낸 협조는 각종 민생 안정책을 실현시키는 데 사용됐다. 대동법과 균역법 등은 영조를 거쳐 정조 시대에 와서 빛을 발했다. 그는 새로운 정책의 효과가 드러나지 않으면 ‘고민하다 날이 새는 줄 몰랐다(靜夜思惟 自不覺其明發也)’고 털어놓을 정도로 정성을 다했다.

 명분에 치우쳐 민생 안정에 실패한 정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는 최근 미국 중간선거에서 오바마 정부의 참패가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정조가 위대한 군주로 기억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송원섭 JES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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