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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초리 본 학생들 “교육감께 전화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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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체벌 금지 규정이 적용된 첫날인 1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학교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선서를 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1일 오전 서울 M고 영어 수업시간. 김모(50) 교사는 평소처럼 작은 회초리를 들고 수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학생들이 웅성댔다. “자, 조용히 해.” 김 교사가 한마디 하자 한 학생이 대뜸 “선생님, 오늘부터 체벌 전면금지인데요. 우리도 전화기 있어요. 교육감님께 전화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김 교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자꾸 이러면 벌점 더 많이 준다”고만 말하고는 수업을 시작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고교에선 학년부장 A교사가 지각생 20여 명의 엉덩이를 한 대씩 때렸다가 “체벌 금지인데 왜 때리느냐”는 항의를 받아야 했다.

 체벌 전면금지가 시행된 첫날 서울시내 초·중·고에선 이처럼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대부분의 교사는 매를 들기보다 말로 타이르거나 벌점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학생 지도에 나섰다.

 서울 Y초등학교에서는 전교 어린이 회장인 조모(13)군이 “교칙을 준수하겠다”며 대표선서를 했고,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노란색 벌점 카드를 보여줬다. 학생들이 복도를 뛰면 1점, 욕을 하면 2점, 남의 물건을 만지면 2점 등이었다. 벌점이 10점 이상이 되면 교실 뒤에 마련된 의자에 따로 앉거나 교사와 상담을 해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교사들은 편치 않은 심기를 드러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빵셔틀(약한 아이에게 빵 심부름 시키기)을 시키는 문제아들이 학교 분위기를 주름잡게 됐다”며 답답해했다. 그는 “매를 드는 교사는 그나마 열정이 있는 교사였다”며 “이젠 누가 험한 꼴 당할 걸 무릅쓰고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지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학생들은 체벌 금지를 대체로 반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중학교 2학년생은 자신의 블로그에 “요즘 우리 학교 ‘노는 애’들이 체벌 금지라고 날뛰는 걸 보면 소름 끼친다”고 적기도 했다.

 교사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한국교총은 “시교육청이 대법원 판례에 근거한 교육적 체벌을 한 교원을 징계할 경우 소송 지원 및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 교육법이 교육적 체벌을 허용하는데 하위 개념인 교육감 지침에 따라 교사를 징계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글=박유미·김민상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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