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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 칼럼

소니와 도요타의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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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소니라면 일본이 자랑하는 전자 명문이다. 자동차의 도요타(豊田)와 더불어 일본기업의 자존심으로 꼽힌다. 그 소니가 경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인을 회장 겸 CEO로 모셔온다. 그동안 소니의 CEO로서 화려한 스탠드 플레이를 했던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회장이 물러나고 소니의 미국법인 사장 하워드 스트링어가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것이다.

소니는 2차대전 후에 탄생해 세계 일류로 성장한 꿈과 희망의 기업이었다. 그 과정에서 공동창업자인 천재기술자 이부카 마사루(井深大)와 명경영자 모리다 아키오(盛田昭夫)가 이뤄낸 성공 이야기는 이미 경영신화가 돼 있다.

소니는 오너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이상적 모델로 생각돼 왔다. 사실 이데이 회장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사외이사 등 미국식 기업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또 그걸 자랑했다. 그 사외이사들이 이번 소니의 경영진 개편에 앞장섰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CEO를 이사회에서 강판시킨 것은 일본기업에선 드문 일이다. 새로운 관행이 생긴 것으로 경영자들에겐 큰 충격이다.

소니는 최근 몇 년 동안 본업에서 계속 밀렸다. 소니의 기반인 디지털 전자 부문이 크게 죽을 쑤고 적자도 많이 났다. 소니의 강점인 꿈과 희망을 주는 히트상품이 없었던 것이다. 이데이 회장은 전자와 콘텐트 사업의 융합을 내걸었으나 정신이 들고 보니 안방조차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소니의 경영위기는 오래전부터 소문이 났다. 그러나 경영진은 이를 애써 부인했다. 소니는 위기 때마다 도약해 왔다면서 이번에도 도약을 위한 진통이라고 했다. 그러나 시장은 냉정한 것이어서 실적은 계속 부진하고 주가는 떨어졌다. 결국 극약 처방으로 경영진 교체가 이뤄진 것인데 발표가 나자 주가가 약간 올랐다.

그동안 이데이 회장은 일본의 간판 경영자로서 많은 활약을 했다. 국제통인 그는 미국 GM자동차와 네슬레의 사외이사로 활동했고 일본 IT전략회의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다보스 포럼 등 국제회의에 단골로 참석하고 명문(名文)으로 된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소니의 실적이 부진하자 불명예 퇴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업 CEO의 평가는 실적이 말하는 것이다. 소니의 새 CEO는 일본어도 모르고 근무도 미국에서 한다고 한다.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소니의 사정이 절박했다 할 수 있다.

소니와 대조되는 기업으로 도요타가 꼽힌다. 도요타는 요즘 유행하는 미국형 시스템엔 별 관심이 없다. 일본 문화에 맞는 일본류의 경영을 고수하면서 사외이사제도 없다. 또 종신고용제를 고집한다. 심지어 오너 시스템도 버리지 않고 있다. 다음 CEO는 창업자의 4대째인 도요타 가문에서 낼 준비를 하고 있다.

도요타의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회장은 유행을 타지 않고 실질을 강조한다. 도요타의 본업인 자동차 제조에 가장 역점을 두고 시대를 앞서가는 자동차 만들기에 전력투구했다. 소니가 영화.콘텐트 등 소프트 부문에 신경 쓰느라 좋은 물건 만들기에 소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도요타의 실질경영은 최근 들어 빛을 발하고 있다. 이미 렉서스 등 명차를 잇따라 내 포드를 제치고 세계 랭킹 2위에 올라섰다. 이대로 가면 몇 년 안에 GM을 제치고 세계 수위로 올라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유행과 시스템에 신경을 썼던 소니와 일본류를 고집하면서 본업에 전력투구했던 도요타는 명암이 엇갈렸다. 기업지배구조와 전문경영자 시스템을 아무리 잘 만들어 놓아도 경영전략과 CEO가 잘못되면 기업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걸 아직 우리나라에선 믿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외형적 투명성과 모양새에 너무 신경을 쓴다.

소니가 외국인을 CEO로 앉히는 것은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이방인인 카를로스 곤이 대담한 구조개혁으로 닛산자동차를 회생시켰듯이 외국인이어야 소니를 구할 결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소니에서 일어난 일을 남의 일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모양새를 중시하고 본업을 소홀히 하면 한국에도 곧 닥칠지 모른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