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직도 ‘청부 입법’ 횡행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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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일부 국회의원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로부터 후원금을 받고 ‘청부(請負) 입법’ 활동을 벌인 의혹을 사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청목회는 회원 5000여 명으로부터 특별회비 등 8억원을 걷은 뒤 청원경찰과 가족 등 1000여 명 명의로 모두 2억7000여만원의 후원금을 여야 국회의원 33명에게 제공했다. 의원들이 청목회 돈을 받은 시기는 공교롭게도 2009년 12월 청원경찰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직전인 그해 10월에 집중됐다. 1000만원 이상을 받은 의원 10여 명은 법 개정안에 이름을 올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이 대부분이었다. 이러니 후원금 명목의 금품 로비 덕택에 관련법이 통과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이다.

 올 7월 시행된 개정 청원경찰법은 청원경찰의 봉급을 국가경찰관 수준으로 올리고 퇴직연령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등 중요 공공시설에서 경찰 대신 경비를 맡는 청원경찰의 처우 개선에 시비 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늘어나는 청원경찰 유지경비는 국가나 지자체가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금이란 얘기다. 국회의원이 후원금 몇 푼과 뒷거래를 통해 청부 입법을 했다면 세금을 축낸 심각한 범법행위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엔 미국과 달리 로비스트법이 없어 입법 과정에 영향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개인이나 단체들이 금품로비에 유혹을 느끼고, 국회의원이 이에 휘둘리면 불법과 편법이 판치는 불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 뻔하다. ‘모든 국민은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請願)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의 청원권 보장과 ‘법률·명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 또는 폐지’를 그 대상에 포함시킨 청원법은 이를 위해 마련된 장치들이다. 법 개정이 필요했다면 이런 청원 절차를 거치는 당당한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세간에선 청원경찰법뿐 아니라 국회의 많은 입법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행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의심한다. 대법원 판례는 후원금 성격에 대가성이 있거나 로비 목적이 있을 경우 뇌물수수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청부 입법이란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검찰은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