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초보 마라토너 황운하 기자의 10㎞ 도전기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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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손이 시린지 황영조 감독(왼쪽)이 소매 안에 손을 넣은 채 뛰고 있다. [리복 제공]

10월 26일 오전 5시50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황영조 감독을 만났다. 생초보 마라토너인 기자가 10㎞에 도전하는 ‘약속의 날’이다. 일출까지 40분 정도 남아 어두웠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날씨를 원망했다. 수은주가 영하 1도까지 떨어졌다. 10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것은 8년 만이란다. 강한 바람이 불어 체감온도는 더 낮았다. 3주 전 5㎞ 도전 후 감기가 찾아들어 제대로 훈련도 못 했는데, 궂은 날씨까지 겹쳐 도전 실패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오늘 같은 날씨면 생초보 마라토너가 10㎞를 소화하기 힘들겠죠?”(기자)

 “괜찮아요. 땀 배출과 체력 소모가 적어 오히려 뛰기 좋아요.”(황 감독)

 도전 날짜를 연기해 보려다 되레 혹을 붙였다. 황 감독이 이런 속내를 읽었는지 흰색 모자 하나를 건넸다. “추운 날씨에는 모자·장갑·목도리를 꼭 준비해 체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20분 정도 몸을 풀었을까. “자, 출발합시다.”(황 감독)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도전의 깃발이 올랐다. 올림픽공원 외각을 두 바퀴 돌면 10㎞다. 출발시간 오전 6시13분25초.

 “초보자들은 반환점까지 몸을 푼다는 느낌으로 가야 해요. 초반엔 남에게 추월당하는 게 좋아요. 반환점을 돌아선 컨디션을 보며 한 명씩 추월해도 괜찮습니다. 이게 좋은 페이스예요.” 달린 지 10분 정도 지나자 몸에서 열이 났다.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은데요.”(기자)

 “이때부터 속도를 잘 유지해야 해요. 초보자들은 몸이 풀리면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높이는데 금방 지쳐요.”(황 감독)

 오전 6시51분. 올림픽공원 외곽을 한 바퀴 돌아 5㎞를 달렸다. 황 감독이 컨디션을 확인했다.

 “괜찮아요? 힘들면 잠깐 걸어도 괜찮아요. 어지럼증이 있고 호흡이 힘든데 정신력으로 뛰겠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초보 마라토너들은 몸이 덜 만들어졌고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목표한 거리를 다 뛸 필요는 없어요. 몸이 허락하는 만큼 즐기면서 가는 게 중요해요. 중간에 포기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황 감독)

 7㎞ 정도 뛰었을 때 무릎과 골반에 약간의 통증과 피로감이 찾아왔다. ‘포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황 감독의 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골인 지점이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발이 빨라졌다. “같은 거리를 천천히 뛰면 오래 뛰죠. 빨리 뛰는 것만큼 운동 효과가 있어요.”(황 감독)

 길가에 나뒹구는 낙엽과 은행들을 얼마나 밟았을까. 결국 생초보 마라토너가 결승선에 도착했다. 오전 7시29분57초. 10㎞ 뛰는 데 76분32초가 걸렸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에요. 뛰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쉬지 않고 한 시간 넘게 뛰라면 겁을 먹죠. 하지만 호흡을 무너뜨리지 않고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뛸 수 있어요.”(황 감독)

 10㎞를 완주하자 한파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한 시간 넘게 혹사한 다리는 묵직했지만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을 붙잡아 두고 싶었다. 이제야 ‘마라톤의 맛’을 알 것 같았다. 황 감독이 격려하며 비행기를 태운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보약이 달리기예요. 조금만 연습하면 풀코스도 뛸 수 있겠는데요.”

 “그럼, 생초보 마라토너 딱지 떼 주시는 건가요?”(기자)

 “네, 이제 초보 마라토너입니다.”(황 감독)

 설렁탕으로 배를 채우고 헤어지려는데 황 감독이 한마디 던진다. “내년 봄에 하프(20㎞) 마라톤 대회 같이 참가하는 겁니다.” 순간 기분 좋은 착각에 빠졌다. 난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가 인정한 ‘마라토너’다.

황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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