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프랑스어 몰라도 프랑스 문화에 빠질 수 있습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0호 20면

로르 쿠드레 로 원장은 “전 세계 프랑스문화원 가운데 서울에 있는 문화원의 파워가 크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1970·80년대 한국 젊은이들의 문화 샘터 역할을 한 프랑스문화원은 9년 전 추억 어린 서울 종로구 사간동 시대를 접었다. 더 활발한 활동을 위해 서울 한복판, 숭례문 근처 봉래동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일반인들의 발길은 사간동 시절보다 덜한 듯하지만 전국의 공연·전시장에서 프랑스의 현대 문화 행사는 해를 갈수록 풍성해지고 있다. 2008년 가을부터 서울에서 한국과 프랑스 문화 교류를 지휘하고 있는 로르 쿠드레 로(53) 프랑스문화원장을 봉래동 우리빌딩 14층 사무실에서 만났다. 파리 정치대학과 파리 7대학, 국립행정대학원(ENA) 출신인 로 원장은 베이징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주일본 프랑스대사관에서 근무한 아시아통이다. 그의 옷차림과 공손한 인사법에서 동양적인 분위기가 묻어났다.

로르 쿠드레 로 프랑스문화원장

-프랑스문화원이 서울에 자리한 지 42년이 됐다. 그간 트렌드도 바뀌었을 텐데.
“70·80년대 프랑스문화원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세계를 보는 창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때는 해외여행도 제한된 시절 아닌가. 지금 한국은 민주화가 됐고 정치·경제적으로도 큰 발전을 이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개최한다. 큰 변화다. 우리도 여기에 맞게 변신하고 있다.”

-어떤 변화를 모색하나.
“그땐 일방적인 문화의 전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류다. 과학과 문화, 교육 부문에서 교류하고 협력한다. 한국인들의 문화활동 파트너로서 역할을 한다는 게 우리 활동의 모토다. 협력의 키워드는 공동제작(co-production)인데, 과천에서 열린 길거리 축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프랑스를 좋아하는, 이른바 '프랑코필(Francophile)’의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 프랑스에서 건축을 전공한 분들이 주축이 된 독서클럽이 있는데 우리 문화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 인문학과 예술 등 다방면의 책을 읽고 토론한다. 와인 클래스도 있다. 한국 음식과 와인의 궁합을 연구하는 모임도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다. 우리는 모든 클럽의 활동을 지원하려 노력하고 있다.”

-프랑스어를 해야 클럽에 들 수 있나.
“독서 클럽은 어느 정도 수준이 돼야 하지만 와인 클래스는 한국어로 진행된다.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프랑스 문화를 즐길 수 없는가’, 이런 문제를 사실 많이 고민했다. 얼마 전 18층 미디어 도서관을 리노베이션하면서 프랑스어를 모르는 사람도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자료를 많이 갖췄다. 한국어로 번역된 프랑스 문학 작품들도 많다.”

-프랑스어의 영향력이 쇠락하고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영어 열풍이 일고 있지만 프랑스어도 여전히 유용한 언어다. 한국의 경우 최근 북아프리카 진출이 활발하다. 이 지역 사람들은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에서 프랑스어의 인기는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도 4만6000명이나 된다. 이번에 실시하는 프랑스어 자격시험에 2400명이 응시했다. 프랑스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도 6500명이고 매년 1600명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아시아에서 한국 문화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보나.
“나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일본에서도 오래 근무했다. 솔직히 세 나라 말 가운데 한국어가 가장 어렵다. 종성 '응'(ㅇ)과 경음과 격음 발음 구분이 쉽지 않다. 반면, 일하기는 수월하고 즐겁다. 프랑스와 한국인의 기질이 감성적이고 격정적이고 솔직하다. 모여서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긴다는 점도 비슷하다. 남편(작가, 외대 교수)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카미유(17) 모두 한국 생활을 즐기고 있다. 서울 시민들에게 우리 문화원 레스토랑으로 와서 프랑스의 와인과 음식을 드셔 보라고 권하고 싶다. 프랑스말을 몰라도 이곳에선 프랑스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아이들 손잡고 함께 오면 좋을 것 같다.”

로 원장은 “각국에 나가 있는 프랑스의 문화원 가운데 서울의 문화원 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재량권도 많다”며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본국 정부에서 문화협력 사업을 심사할 때 한국 측 파트너의 요구는 거의 반영되는 편입니다. 루브르 전 같은 주요 전시 때도 다른 나라보다 한국 전시를 먼저 하도록 해주고요. 지난 6월 아시아 지역 50개 문화원 관계자 회의가 엑스포가 열리는 상하이를 제치고 서울에서 열린 것은 주 서울 문화원의 파워를 반영하는 것이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