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스타일 서포터스 ⑧ 루게릭 환자 박승일씨의 어머니 손복순씨와 연인 김중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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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스타일링 어떻게 손씨는 교회와 루게릭협회 모임을 하면서 ‘공적인 자리’가 많아졌다. 편하면서도 격식을 갖춘 듯한 옷이 필요하다. 요가 강사인 김씨는 일할 때나 간병할 때나 늘 편한 운동복만 입는다. 평소와 달리 여성스럽고 발랄한 옷차림에 도전해보고 싶다. 여기에 하나 더, 마치 모녀 같은 두 사람을 위한 커플룩도 연출해봤다. (사진은 변신 전 모습) [도움말 TNGTW 이성경 디자인실장, 닥스숙녀 박임영 디자인실장]

‘스타일 서포터스’는 밝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이웃을 찾아 꾸며줍니다. 어렵지만 밝게 살아가는 그들이 아름다워지면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서포터스는 여러분의 삶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뭐 좋은 일도 없는데 신문에 나오나 망설였는데 승일이가 하라고 하대요. 엄마 예뻐지라고.”전 농구 코치 박승일씨의 어머니 손복순(68)씨 입에선 아들 얘기부터 나왔다. 박씨는 2002년 최연소 농구 코치(현대 모비스)로 선임되자마자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코트를 쉼 없이 누비던 그는 이젠 미세한 눈 깜박임으로만 의사를 표시한다.

이달 스타일 서포터스는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어머니 손씨와 여자친구 김중현(36)씨에게 ‘변신’을 선물했다. 조심스러워하던 그들도 막상 변한 스스로를 보고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스타일은, 때론 비타민이다. 이들에게 LG패션 ‘닥스’와 ‘TNGTW’가 의상을 선물했고, 라뷰티코아 일산킨텍스점(헤어: 릴리, 메이크업: 엘리)에서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을 해주었다.

글=이도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4시간 눈 뗄 수 없는 간호, 환자 가족은 아플 자격 없어

‘가족들의 피를 말려 같이 죽음으로 몰고 가는 물귀신’. 루게릭 환자를 둔 가족들의 고통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200만원 가까이 되는 간병인 비용도 부담스럽고, 24시간 동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간호도 지치게 한다. 손씨는 집(경기도 용인시 동천동)에 병실을 만들고 남편·간병인과 함께 아들을 돌본다. 그나마 눈 깜박임을 이해하는 간병인을 둔 게 다행이다. “누가 그러대요. 루게릭병 환자 가족은 아플 자격도 없다고. 그 말이 딱 맞아요.”

김씨는 매주 사흘씩 서울 신당동 집에서 박씨가 있는 용인까지 왕복 3시간 거리를 오간다. 아침에 가면 밤 12시나 돼서야 집에 돌아온다. 하루 종일 박씨 옆에 붙어서 씻고 싶은지, 채널을 돌리고 싶은지, 잠시 눈을 부치고 싶은지 그 모든 것들을 알아챈다. “같이 있다 보니 다른 연인들처럼 툭하면 싸워요. 오빠가 영화 다운로드 해놓은 걸 지웠다고 내내 삐친 적도 있어요.” 그래도 김씨가 조금 일찍 집에 가려고 하면 싫은 티부터 내는, 영락없는 닭살 커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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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진단 받았을 땐 3년 넘기기 힘들다고 했는데 …

두 사람은 모녀 같다.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말을 걸고, 옷을 고를 때도 서로의 취향을 서포터스 팀에게 귀띔해주기 바빴다. 스스로 고른 옷도 서로 ‘괜찮다’고 합의를 봐야 최종 선택을 했다.

손씨는 김씨를 두고 “나보다 아들한테 더 필요한 사람, 고마운 사람”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씨는 박씨가 이미 루게릭병을 앓고 있던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사귀기 시작했다. 2002년 발병 후 이혼하고 상처가 컸던 그를 한결같은 사랑으로 감싸주는 사람이다.

밝고 싹싹한 김씨는 “어머님 간병 덕분에 오빠가 지금까지 버텨주는 것”이라고 화답했다.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땐 3년을 넘기기 힘들다고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가 오빠가 원하는 걸 그대로 따라주세요. 삶의 힘이 돼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오빠가 더 힘을 내는 것 같아요.”

아프지만 희망을 품고 사는 오빠, 제 이상형이에요

‘루게릭 환자 요양소 건립’. 아픈 박씨의 꿈이다. 난치병 환자뿐 아니라 환자 가족들을 위해 전문시설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2002년 만든 인터넷 카페(cafe.daum.net/alswithpark) 회원이 이미 7000여 명이다. 이들은 매달 1만~2만원씩 정성을 모아준다. 최근엔 가수 션·정혜영 커플이 1억원을 기부했고, 후배 함지훈 선수(현대 모비스)도 챔피언 결정전에서 받은 MVP 상금 500만원을 보내왔다. 이제 10억원을 목표로 한 기금이 절반쯤 모였다.

손씨와 김씨는 박씨의 꿈을 실행하는 ‘행동대원’이다. 손씨는 2~3달에 한 번씩 카페 정기모임을 하고, 손씨는 20~30명의 식사 준비를 한다. ‘루게릭협회’ 모임에 나가 홍보를 하기도 한다. “아들은 내 앞에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어요. 오히려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가 할 일을 찾았죠. 엄마인 제가 더 나설 수밖에 없죠.”

김씨는 4~5시간씩 문자판을 대신 쳐서 인터넷 카페와 트위터에 글을 올린다. 요즘은 활동이 많아져 원래 일하던 요가 강사도 쉰다. 김씨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김씨는 단호하다. 자신이 행복해지자고 선택한 길이라는 것.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했다. “오빠는 제 이상형이에요. 자기가 아프면서도 희망을 품고 살잖아요. 정말 존경할 수 있는 남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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