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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담 쌓게 하는 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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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몇 년 전 이야기다. 중학교에 다니던 딸 아이가 책을 사달라며 목록을 가져왔다. 국어 선생님이 방학 과제로 읽기를 권한 책들이라 했다. 10권 남짓한 목록을 살펴보니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도 끼여 있는 것이 아닌가.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소개하며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과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정도로만 아는 명저였다. 읽으려 시도했다 미뤄둔 책이기에 중학생에겐 과하다 싶어 입맛이 썼다.

지난 봄엔 대학에 막 들어간 막내가 책을 찾았다. 교양과정의 현대문학 강좌에서 시험에 나올 필독서란다. 한국 소설 다섯 작품이었는데, 선배들에게 들었다며 전해준 시험방식이 가관이었다. 남녀 주인공들이 처음 만난 다방 이름 등을 시시콜콜 묻는 식이란다. 빌려 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지 책을 가지고 시험보는 오픈 북 형태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심하다 싶었다.

어지간한 어른도 읽지 못한 토머스 쿤의 저서를 숙제로 접한 중학생은 어찌어찌 읽어냈을까? 읽었다면 제대로 이해는 했을까? 그 뒤로 지식의 즐거움을 찾아 책을 펼칠 생각이 들까?

고교 시절 수능시험 보듯, 소설을 샅샅이 파악해야 하는 대학생은 과연 그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까? 수강이 끝난 뒤에도 이야기를 즐기기 위해 TV나 영화 대신 책과 씨름할까? 절대 아닐 것이다. 책이라면 도리머리나 흔들게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쏟아져 나오는 추천도서니 권장도서니 하는 것도 이 같은 염독증(厭讀症)을 부추기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2월 서울대가 재학생들의 고전 교양을 키우기 위해 발표한 '권장도서 100선'을 보자. 권장도서 중 서울대 도서관의 대출 상위 100종에 든 것이 '토지' '그리스로마 신화' 2종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히 이 시대 대학생들의 천박한 독서 풍토만 나무랄 일일까. 대학교수 20명이 1년 여에 걸쳐 검토하면서 자신들의 전공과 관련해 '읽어야'할 책을 서로 골랐던 것은 아닌가. 그러기에 베이컨의 '신논리학'과 지눌의 '보조법어'가 나란히 자리한 것은 아닐까.

고백하거니와 처음 접하는 책, 한글판이 나올 줄도 몰랐던 책도 여럿 있었다. 혼자만의 부끄러움이 아닌 것이 남 못지 않게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어느 동료도 "도대체 이 책들을 고른 교수들은 과연 대학 시절, 이 책들을 모두 읽기나 했는지 만나서 물어봤으면 좋겠네"라고 툴툴거렸다.

서울시교육청이 지난 4월 발표한 초. 중.고교 추천도서 매뉴얼도 그랬다. 어느 출판사 사장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우리 책이 끼여 있어 반갑기는 한데 고교 1학년 국어 추천도서로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이 들어 있는 판이니 누가, 어떻게 선정했는지 정말 궁금해요." 절판돼 구하기 힘든 책도 적지 않아 서점도 둘러보지 않고 정한 듯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누구나 공감할 '좋은 책'이나 '교양'의 절대적 기준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엄숙주의에 빠져 현실을 도외시한 명저 추천은 오히려 책과 멀어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부모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해제집이라도 훑어야 했던 학생들은 책이라면 진저리칠 것이기 때문이다. 읽는 이들의 수준은 무시한 채 성적이나 진학을 위해 '재미'없는 책을 읽도록 부담을 주는 것은 책과 담을 쌓도록 하는 일이 아닐까. 그것도 학교 문만 나서면 다시는 넘을 생각이 나지 않도록 높고 두껍게.

김성희 문화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