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경원 칼럼

6자회담이 실패하는 경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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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에는 마치 6자회담을 여는 것 자체가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한국과 미국 등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그러나 물론 6자회담은 우리들이 추구하는 목적이 아니다. 6자회담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과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던 시기에 북한 측의 생각은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에서 우세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데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대미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국제사회가 알게 됐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소련을 비롯해 공산 정권들이 몰락함으로써 북한은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됐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그들의 정권이 다른 공산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내부적으로 붕괴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김정일 정권은 이러한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선군정치와 고난의 행진을 통해 북한 인민을 물샐틈없이 하나로 묶는 작업에 치중해 왔다. 그리고 이 같은 정권의 생존 전략은 북한 인민을 반미 사상으로 철저하게 무장시키는 것이었다. 북한은 경제가 어려운 것도,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는 것도 모두 '미제' 때문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북한은 반미주의가 통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인민은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미국 탓으로 돌리게끔 잘 훈련돼 있다.

그런데 만일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가 해결됐다고 가정해 보면 북한은 '반미'를 계속 통치 수단으로 사용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북한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김정일은 핵 프로그램을 실제로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고 본다.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면 6자회담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제기되는 문제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6자회담의 실패가 부인할 수 없는 결과라고 한다면 우리는 다음 세 가지의 선택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첫째로 생각할 수 있는 반응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 자세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북한을 핵무기 보유 국가로 받아들이는 함의가 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 국가로 인정되는 경우 세계의 비확산 체제에 금이 가든지, 존재 자체가 없어지든지 하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그러니까 북한을 핵무기 보유 국가로 인정하게 되면 핵무기 확산 금지를 전제로 하는 국제질서가 파괴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로 가능한 반응은 북한을 더 큰 선물로 유혹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하도록 종용하는 결과밖에 안 된다. 왜냐하면 협상에서 북한이 내놓는 요구조건을 더 올리면 올릴수록 우리 측이 양보의 수준을 높여 줌으로써 북한이 협상의 단계에 따라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북한이 상대방의 요구 사항들을 부분적으로 계속 요구하면서 이에 따라 우리 측이 양보해 나간다면, 그 결과는 북한 지도부의 협상 전략을 더욱 강경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마지막 셋째 반응은 북한이 핵무기 포기를 거절한 만큼 북한에 강압적이고 파괴적인 반응이 불가피하다는 자세를 보여 주는 것이다. 구체적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특히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에 정당성 있는 제재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북한은 어떤 제재 조치도 전쟁으로 간주하고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압력을 가하는 차원에서 전쟁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북한은 자신이 패배할 것이 분명한 전쟁을 시작할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다고 본다.

협상은 본질적으로 실존하는 힘의 균형을 반영한다. 어떤 경우에도 협상의 출발점부터 강압적(coercive)인 제재 조치를 취할 가능성마저 제거한다면 협상에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김경원 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