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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노 저어 서해 바닷길 383㎞ 횡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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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 조의행씨(앞)와 박기섭씨가 한강에서 훈련하던 도중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조의행(54)씨는 한국의 '포레스트 검프'다. 그는 2000년 한국에서 처음 열린 24시간 마라톤 대회에서 164.2㎞를 뛰어 1위를 차지했다. 2001년에는 한해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4시간 이상을 달리는 '365일 마라톤'도 해냈다. 이 해 그가 뛴 거리를 모두 합치면 1만2478㎞에 이른다.

그런 그가 이제 육지를 벗어나 바다로 간다. 1인승 카누를 타고 서해 횡단에 도전하는 것이다. 조씨는 오는 5월 31일 인천을 떠나 중국 산둥 반도의 웨이하이(威海)까지 383㎞ 바닷길을 노저어 갈 계획이다.

"1인승 카누로 바다를 횡단한다는 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조씨의 도전을 기획한 극한 스포츠 전문가 박기섭(39)씨의 말이다. 국내에 철인3종 경기를 소개한 박씨는 '한국아웃리거(보조 동체)카누연맹(www.kocf.net)'의 창설을 기념하기 위해 이 행사를 기획했다. 그는 청소년 탐험단과 함께 조씨의 서해 횡단에 동행하며 항해의 안전을 보살필 계획이다.

조씨가 타고 갈 배(스타트호)는 길이 6.5m, 무게 10㎏의 경기용 카누다. 파도 속에서 균형을 잡기 위한 보조 동체가 있지만 큰 바다를 건너기에는 턱 없이 작은 배다. 눕기는커녕 쪼그려 앉은 자세조차 바꾸지 못한다. 그런 배에서 약 사흘 간 먹고 자며 노 하나 만을 이용해 서해를 가로질러야 한다. 기네스북에는 노를 젓는 배로 도버해협과 대서양을 건넌 기록이 있지만 모두 이보다 큰 배였고, 단독 횡단이 아니라 각각 2명과 7명의 공동 횡단이었다.

박기섭씨는 다른 극한 스포츠맨들에게도 이 계획을 제안해봤지만 모두들 "불가능한 얘기"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조씨는 달랐다. "지구라도 돌 수 있다"며 의욕을 보이면서 지난해 9월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경기도 화성이 고향인 조씨는 선반 기계공 출신이다. 서울 문래동 '마치코바(꼬마 공장)'에서 35년을 보냈다. 성진기계라는 자신의 공장을 열어 10명 가까이 직원을 둔 사장님도 됐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때 빈털터리가 됐다. 어음은 부도가 났고, 공장과 집은 물론 그가 생명처럼 아끼던 선반 등 기계들도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갔다. 아내와 자녀는 뿔뿔이 흩어졌고, 자신은 서울역에서 노숙을 했다. 1년 간 방황한 뒤 이웃의 도움으로 재기에 나섰으나 쉽지 않았다.

달리기는 이때 시작했다. "뛸 때 만큼은 모든 걸 잊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사업 생각도, 돈 걱정도 다 사라졌거든요." 점차 생활이 안정됐지만 그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래서 그에게는 각종 신기록의 영예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극한 스포츠맨이라는 칭호가 붙었다.

왕희수 기자 <goma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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