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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왕궁 남한산성 행궁 100년 만에 되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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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남한산성 행궁이 복원 작업을 시작한 지 10년 만인 24일 준공식을 열고 공개된다. 전체 252.5칸(1667㎡) 규모의 남한산성 행궁은 1910년 이후 일본에 의해 훼손돼 흔적만 남아 있다. 2000년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발굴을 시작하면서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사진은 복원된 행궁 전경. [경기문화재단 제공]

20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남한산성 행궁터. 포클레인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 다지기를 하고 있다. 포클레인 뒤로 기와가 겹겹이 올라간 커다란 목조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남루(漢南樓)’라는 현판이 내걸린 행궁 입구의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이다. 서까래 끝에는 용의 머리 모양을 본뜬 취두, 용두, 장삼이 자리 잡고 있다.

 “취두, 용두, 장삼이 지붕에 있다는 것은 관공서임을 의미합니다. 가정집에서는 이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죠. 용이 비를 내리는 영물이니 건물에 불이 나지 말라는 뜻으로 올리는 겁니다.”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문화유산팀 노현균 박사의 해설을 들으며 기자는 소실된 지 100년 만에 복원된 행궁 안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2000년부터 행궁터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전체 252.5칸(1667㎡) 중 2002년 10월에는 임금의 침소인 상궐(내행전) 72.5칸(479㎡)을, 2004년 8월에는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 26칸(172㎡)을 복원한 데 이어 이번에 임금의 집무실인 하궐 154칸(1016㎡)을 복원해 행궁으로서의 골격을 갖추게 됐다. 지금까지 모두 202억710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24일 하궐 준공식을 열고 그동안의 발굴조사와 복원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연다. 종각과 주변 권역을 정비하고 단청 공사를 마친 뒤, 내년 하반기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린 치욕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복원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행궁터는 허허벌판으로 방치돼 왔다. 그러나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굴욕을 당한 삼전도는 지금의 서울 송파 지역이고, 남한산성은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고 강조한다.

 행궁(行宮)은 임금이 요양·사냥 등을 위해 궁 밖 나들이를 할 때 머물던 별궁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남한산성 행궁은 피난처의 역할이 컸다. 임금이 거주하는 곳인 경복궁이나 정조가 만든 화성행궁과 달리 화려하지도, 넓지도 않다. 계단은 40㎝로 높고, 담과 바닥은 화강석 등을 이용해 두껍게 만들었다. 왕을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건축 방법이다.

 행궁의 구조는 특이하다. 왕의 집무실인 하궐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신하들이 일하는 일장각이 있다. 일장각에서 나가는 2개의 문은 외행전 방향인 정면이 아닌 좌우로 돌아가도록 만들어졌다. 왕의 정원인 후원으로 가는 쪽문 계단도 정면이 아니라 옆으로 돌아야 보인다. 노현균 박사는 “왕이 계신 곳인 만큼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니 우회하라는 의미”라며 “일반 한옥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라고 했다.

 남한산성 행궁에는 다른 행궁과 달리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좌전인 영녕전(永寧殿)과 정전(正殿)이 있다. 이는 남한산성 행궁이 단순한 행궁이나 임금의 피난처가 아닌 비상시 임시 도읍지의 역할을 한 증거라는 것이 노 박사의 설명이다.

 복원된 남한산성은 올해 1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경기문화재단은 고문헌과 옛 사진 등의 자료를 검증해 설계했고 흩어져 있던 원래 석재를 수습해 사용했다. 한남루의 기둥 4개는 인근 남한산성 초교의 정문으로 쓰던 것이다. 일제가 행궁을 훼손한 1910년 무렵 주민들이 가져간 것을 다시 기증받은 것이다. 색이 어둡거나 모서리가 둥근 석재는 대부분 훼손 당시 쓰인 것이다. 벽이나 천장, 바닥 따위에 바르는 미장재도 전통 미장재인 강회를 썼다.

 전종덕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장은 “복원 사업을 계기로 ‘패전 장소’로 인식되던 남한산성의 이미지를 바꾸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도록 해 우리의 우수한 건축 문화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광주=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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