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의문사 규명 나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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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우크라이나에서 의문사 진상규명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오렌지 혁명'을 통해 집권한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은 1일 "레오니트 쿠치마 전 대통령 시절에 저질러진 수십 건의 의문사 진상규명과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할 국립수사국을 만들겠다"며 "의문사 진상 규명은 나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했다. 쿠치마 전 대통령 재임 동안에 의문의 죽음을 당한 야당 정치인과 야당 성향 기업인.언론인 등 20여 명에 대한 수사를 본격적으로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유셴코 대통령은 이날 대표적 의문사 가운데 하나인 게오르기 공가제 살해 사건의 용의자 3명을 검거했다고 직접 발표했다. 공가제는 인터넷 신문 '우크라이나의 진실' 편집장으로 쿠치마 대통령의 정책을 신랄히 비판해 오다, 2000년 9월 귀가 도중 실종됐다. 한 달 반 뒤 수도 키예프 근교의 숲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머리가 잘려나간 참혹한 상태였다.

우크라이나 언론들은 "공가제 살해 사건의 용의자 3명은 권력기관 소속"이라고 보도했다. 3명 중 한 명은 현재 경찰 고위 간부로 쿠치마 정권 당시 조직범죄 수사대 키예프 지국장을 맡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언론은 "현재 공가제 살해를 지시한 배후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며 쿠치마 대통령과 당시 내무장관 등이 지목되고 있다"고 전했다.

쿠치마 배후설은 2000년 11월 야당인 사회민주당이 쿠치마 대통령과 내무장관 유리 크라프첸코 사이의 대화를 녹음한 테이프를 공개하면서 제기되기도 했다. 대통령 경호실 직원이 쿠치마의 집무실에 설치한 도청장치로 녹음한 것이었다. 이 테이프에서 쿠치마 대통령은 공가제 기사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며 "그놈을 제거해 버려라. 체첸인들에게 넘겨 버려라"고 반복해 말했다. 내무장관이 얼마 뒤 "지시사항을 이행했다"고 쿠치마에게 보고하는 내용도 테이프에 들어 있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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