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군 개혁 10년 프로그램 짜자 <2부> 선진국 국방혁신 현장을 가다 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8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주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열린 2010학년도 입학식에서 신입생도들이 행진하고 있다. [웨스트포인트=정경민 특파원]

독일 뮌헨 공항에서 동남쪽으로 약 50㎞를 달리자 뮌헨 연방군대학 이 나타났다. 이 학교는 육·해·공 3군별로 사관학교가 있는 한국·미국 등과는 달리 전군의 장교를 한 곳에서 길러내는 독특한 군사교육기관이다. 15개월의 기초훈련을 마친 초급 장교들은 여기서 4년간의 학·석사 통합 과정을 밟는다. 민간인이 총장을 맡고 있다는 점도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하지만 자질이 뛰어난 학생을 군으로 불러모아 국가의 동량이 될 인재를 배출한다는 점에선 세계 어느 나라의 군사교육기관보다 성공한 곳이다. 1970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군을 이끌 사람들에겐 여느 대학보다 뛰어난 고등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한 뒤 3년 후 문을 열었다. 학교 대변인 미하엘 브라운스는 “우수한 인재들이 갈수록 군인의 길을 회피한다는 사회적 위기감이 창설 배경이었다”고 설명했다.

 독일이 겪었던 군 기피 현상의 원인은 복합적이었다. 고속 성장으로 기업들의 고급 인력 수요가 늘자 군 장교의 인기가 떨어졌다. 피라미드 형태의 군 인력구조 때문에 상당수 장교가 중도 전역해야 하는 데다 이들은 사회에서 새 직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학비 면제도 독일에선 유인책이 되지 못했다. 대부분의 일반 대학도 주립(州立)이어서 수업료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 슈미트 전 총리는 장교 지원자 전원에게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군사교육은 연방군대학에 들어오기 전 육·해·공 소속별로 15개월의 훈련을 집중적으로 받는다. 브라운스 대변인은 “민간 기업과 인재 유치 경쟁을 해서 이기겠다는 것이 슈미트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 결과 군의 수준도 높이고, 전역 뒤 재취업도 잘 되도록 해 인재들을 군으로 불러들인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이 덕에 현재 독일의 장교 지망 경쟁률은 6~8대 1을 헤아린다.

이 학교 경제학과 4학년 토비아스 그뤼엘(22)은 “졸업 후 7년 반 정도의 의무 복무를 마치면 본인의 희망에 따라 대부분 어렵지 않게 BMW·지멘스 등 대기업 중간간부로 채용된다”고 말했다. 군 장교 전원을 석사과정까지 교육하는 것은 그랑제콜(특수대학) 형태로 운영되는 프랑스의 육·해·공군 사관학교도 마찬가지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군사교육을 넘어선 전인교육으로 국가의 엘리트를 양성한다는 측면에선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도 다르지 않다. 17개 학과에 47개 전공 과정이 개설된 교과과정과 교수진의 수준은 미국의 최고 명문대학과 어깨를 겨룬다. 미국 경제전문 잡지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전국 학부 대학 평가에서 웨스트포인트는 2009년 1위에 이어 올해도 4위를 차지했다. 공립학교에선 부동의 1위다. 유명 장학재단의 수혜자 수도 아이비리그에 뒤지지 않는다. 로즈 장학금 수혜자 수는 하버드·예일·프린스턴에 이어 4위, 마셜 장학금은 6위, 트루먼 장학금은 3위다. 티머시 트레이노어 학장은 “웨스트포인트는 직업군인 양성소에 머무르지 않고 군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해 나갈 수 있는 지도자를 키우는 곳”이라고 말했다.

 강좌당 생도 수는 15명 안팎이며 모든 강의는 토론식이다. 한국 육사에서 2년을 보낸 뒤 웨스트포인트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오준혁 생도는 “한국에서와 달리 강의실에서 늘 치열한 토론이 벌어져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일방적 주입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은 군사훈련에서도 마찬가지다. 오 생도는 “웨스트포인트에선 상명하복(上命下服)식 훈련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어떤 훈련이든 끝나고 나면 왜 했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를 지휘관과 훈련생이 토론을 통해 공유한다”고 소개했다.

 군사훈련은 학기 중에는 거의 없고 방학 동안에 집중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3학년 미셸 신(한국명 신정은) 생도는 워싱턴주 미군부대에 배치돼 사병들과 함께 훈련을 받았다. 신 생도는 “실제 부대에서 사병들과 부대끼며 생활해 보니 리더로서 장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방학 중 3주간 포르투갈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모든 비용은 정부가 지원했다.

 아이비리그 못지않은 교과과정에 강인한 체력과 투철한 국가관까지 겸비하다 보니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라면 군은 물론 민간 기업에서도 환영받는다.

3학년 매튜 브루크 생도는 “웨스트포인트 졸업생은 1년에 1000명 안팎에 불과하다 보니 군에선 물론 민간 기업에서도 서로 스카우트하려고 한다”며 “선배 졸업생의 절반은 5년간의 의무 군복무를 마친 뒤 주로 위험관리 전문가로 사회에 진출한다”고 설명했다.

 “현대전은 군 지휘관에게 고도의 종합적 판단력을 요구한다. 부하를 지휘하는 리더십은 물론, 국제정세를 읽는 시각에서부터 공학 지식까지 두루 갖춰야 훌륭한 장교가 될 수 있다. 더 이상 사관생도에게 애국심만을 요구해선 안 된다. 군사교육을 뛰어넘는 전천후 인재 양성소의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영국·독일·일본의 군사교육기관을 취재하는 동안 이구동성으로 들은 얘기다.  

◆특별취재팀=최상연·김정욱(워싱턴)·정경민(뉴욕)·박소영·김현기(도쿄)·장세정(베이징)·이상언(파리) 특파원, 예영준·김한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