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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 시니어 리포트] 장기요양보험 시행 2년 … 사례로 본 성과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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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앙일보 6070 취재단. 왼쪽부터 신종수·정규웅·한규남·김성호·곽태형·김재봉 시니어 기자. [조용철 기자]

2008년 7월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가정이 도맡았던 치매와 중풍 환자 수발을 사회가 떠안은 선진형 제도다. 전문가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환자 서비스의 질이 올라가고 가족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요양 서비스 수준이 떨어지고 일부 요양기관의 부정행위가 적발되고 있다. 요양보호사들은 낮은 임금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요양보험 덕분에 위기의 가정이 재탄생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중앙일보는 자매지 이코노미스트와 본지 인터넷 종합 포털 JoinsMsn과 함께 이들의 다양한 사연을 소개하고 과제를 점검한다. 취재와 기사 작성은 본지 출신 은퇴(시니어)기자 6명이 맡았다.

박현수씨(오른쪽)가 아내·아이와 함께 광주광역시 산월동 광주보훈요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아버지 박종철씨를 찾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곽태형 시니어 기자]

광주광역시 광산군 산월동 광주보훈요양원에 아버지 박종철(74)씨를 입원시킨 박현수(39)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겁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까지 절단한 아버지의 증세가 나날이 호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 10월 군 제대 한 달을 앞둔 저는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앞이 캄캄했습니다. 5년 전 어머니가 42세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혼자 꿋꿋하게 잘 버텨오셨지만 끝내 무너지신 겁니다. 아버지는 주위 도움으로 곧 뇌수술을 받았지만 완쾌되지 못하고 우측반신 마비가 시작됐습니다. 1년여 입원 생활을 했지만 병원비를 댈 수 없어 집에서 요양을 하기 시작했어요.”

 충남 천안 고향집에서 반신불수의 아버지를 모시게 된 노총각 박씨는 그때부터 낮에는 직장(천안시 두정동 코리아 웨코스타)에서 일하고 퇴근 뒤엔 병 수발을 하는 고난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그러나 15년 가까이 그런대로 잘 버티던 아버지는 2008년 9월 하반신 동맥경화가 악화돼 끝내 우측 다리를 절단하는 대수술을 받게 됐다. 다행히 아버지는 애국지사의 유족이었다. 아버지의 조부, 그러니까 박현수씨의 증조부 박달성씨는 3·1 독립운동 유공자였다. 서울 보훈병원에서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그때부터 박씨의 생활은 악전고투 그 자체였다.

 “ 다행히 서울 둔촌동 보훈병원 근처에 ‘언약’이라는 이름의 요양보호사 학원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직업을 바꾸어 요양보호사가 되면 수발을 직접 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달 만에 자격증을 땄습니다.”

 박씨는 아버지를 입원시킨 광주 보훈요양원에 요양보호사로 취직했다. 이 병원에서 남자 요양보호사는 박씨가 처음이었다. 박씨의 사정이 알려지자 교보생명 광주명성 FP지점에서 일자리를 제공했다. 박씨는 아버지의 수발을 동료 요양보호사에게 맡기고 새 직업에 전념하게 됐다. 2009년 2월의 일이었다.

 1일 박씨는 아버지 병문안을 갔다. 박씨의 아내 김일열(38)씨 품 안에는 생후 100일을 넘긴 옥동자 대척이가 안겨 있었다.

 “어려운 경우가 닥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사랑이라는 큰 자(尺) 하나를 품고 살라는 뜻으로 이름을 대척이라고 지었습니다.” 손자를 안아 든 병상의 할아버지는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집사람과 5년을 사귀었지만 그동안 결혼할 엄두를 못 냈습니다. 천안에서 직장에 다닐 때나 여기서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나 100만원 봉급으론 살림을 꾸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생기면서 치료비를 요양보험에서 지원받게 됐습니다. 비로소 생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5년 동안 박씨의 지극정성을 옆에서 애타게 지켜보았다는 며느리 김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 가정의 부담을 나라가 떠맡아 주는 이 제도가 없었다면 저희 가족도 없을 뻔했습니다.”



◆시니어 취재팀 명단

김성호(70·파이낸셜뉴스 주필) 전 중앙일보 수석 논설위원
한규남(74)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 대리
정규웅(69·문학평론가)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재봉(65·방통심의위 보도·교양 특별위원장) 전 중앙일보 사회부 차장
신종수(67·(주)데카 고문) 전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
곽태형(61·사진 에세이스트) 전 중앙일보 사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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