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허남진 칼럼

결대로 쳐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야구 중계 해설을 듣다 보면 ‘결대로 치기’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공이 몸쪽으로 들어오면 당겨 치고, 바깥쪽이면 밀어 쳐야 공이 제대로 맞아 나간다는 설명이다. 욕심이 앞서 바깥쪽 공을 무리하게 끌어당기면 십중팔구 빗맞아 내야 땅볼이요, 거꾸로 몸쪽 공을 밀어 치면 뜬 공이 될 확률이 높다. 결대로, 결에 맞춰 방망이를 휘두를 줄 아는 선수가 역시 좋은 타자다.

 5년 임기 중 ‘5회 말’을 넘긴 이명박(MB) 대통령의 타격 실력은 어떤가. 인사 실패와 광우병 촛불 파동의 초반 어려움을 딛고 중반전부터는 상당히 안정을 되찾았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최근엔 지지율이 50%대까지 올라 청와대 사람들은 ‘5할대 타자’라고 으쓱댄다. 지지율 상승을 놓곤 작금의 친(親)서민정책과 공정사회 드라이브가 먹혀든 것이라고 분석한다. 사회적 요청 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여 ‘결대로’ 정책을 펼친 게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과연 그럴까. 여기서 잠시, 타자 MB에게 던져진 공의 결을 살펴보자. 유권자들은 MB에게 무엇을 바라고 표를 던졌을까. 사회정의 실현과 도덕국가 건설을 바란 것일까. 선거전 내내 시끄러웠던 BBK논란은 접어 두더라도 명백한 실정법 위반인 위장전입에도 불구하고 유권자들은 그를 선택했다. 재산문제도 그렇고, MB를 택한 이유가 도덕성 때문은 아닌 게 분명하다.

 현대건설 신화와 함께 구축된 MB의 코드는 ‘경제’와 ‘일’이다. 거기에다 청계천 복원 사업 성공으로 ‘소통’과 ‘추진력’이란 이미지가 더해졌다. 유권자들이 MB를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경제 살리기에 적임자’로 봤기 때문이며, ‘대화와 설득을 바탕으로 일할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MB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은 경제·일·소통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친서민이나 공정사회에 매달리는 건 바깥쪽 공을 무리하게 당겨 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약 MB가 임기 말까지 친서민과 공정사회에 올인한다고 치자. 그러면 MB는 ‘친서민 대통령’이나 ‘정의를 바로 세운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할까. 답은 자명하다. 그쪽과는 거리가 멀다. ‘친서민’은 진보 진영의 앞선 두 대통령 몫이었다. 성과가 어떻든 그들이 상당히 노력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MB는 다시 경제 살리기에 매달리는 게 역사적 흐름에도 맞다.

 MB는 지난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 오찬 간담회를 했다. 그 자리에서 “한국은 세계사적 기회를 맞고 있다”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선진국의 기틀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대통령의 열의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제 MB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염두에 두면 일할 시간이 고작 1년여 남았을까. 성장과 분배와 도덕과 사회정의까지 모든 걸 다 해결하려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이젠 선택하여 집중할 때다.

 당장 매달려야 할 일은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다. 핫 이슈로 떠오른 환율 문제를 비롯, 글로벌 금융체제 개선 등에 개최국으로서, 중재자로서 중차대한 역할이 맡겨져 있다. 이를 잘 치러낸다면 대한민국의 글로벌 위상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G20 회의가 성공리에 마무리되면 그 성과를 토대로 미래 성장기반을 확실하게 다지는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그쪽 방면이야말로 ‘CEO대통령’인 MB의 주특기다. 그동안에도 상당한 성과를 거둔 원전 수출, 자원 외교 같은 분야에 더 힘을 실어 추진한다면 획기적인 소득을 손에 쥘 수 있으리라고 기대된다. 4대 강 사업 마무리와 규제 완화를 통한 서비스산업 육성도 중요하다. 교육·의료 등 서비스 산업을 키우는 일은 일자리 창출과도 직결된다.

 개인적으로 4대 강 사업은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수자원 확보와 홍수 대비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할 바엔 그 분야 전문가인 MB야말로 최고 적임자다. 비판자들은 ‘삽질 대통령’이니 ‘토목 대통령’이니 폄하하지만, 바로 그런 특장점 때문에도 이 정부에서 맡는 게 낫다. 다만 설득과 홍보, 소통노력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우리는 그동안 건국 대통령부터 산업화- 민주화- 남북화해- 탈(脫)권위 대통령 등 나름대로 뚜렷한 업적의 대통령들을 배출했다. MB는 어떤 대통령으로 남게 될까. 혹자는 ‘4대 강 대통령’은 확실할 것이라고 혹평한다. 그렇다면 그건 MB에게도 불행이요, 나라에도 불행이다. 최소한 선진 도약의 기반을 구축한 대통령이란 평가는 얻어야 되며 아직 그런 가능성은 남아있다고 본다. 그러자면 MB부터 초심으로 돌아가 ‘결대로 친다’는 마음가짐을 다져야 한다. 약점을 보완한다고 폼을 바꾸거나 ‘결’과 엇박자로 나가다간 내야 플라이 아웃 당하기 십상이다.

허남진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