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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불모지에 퍼진 예술의 향기, 충남판 열린 음악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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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호 10면

2004년 제12회 ‘가을음악회’에는 러시아의 3대 합창단으로 꼽히는 ‘레드스타 레드아미 코러스’가 출연해 합창과 연주, 춤이 어우러진 무대를 선보였다. [서산장학재단 제공]

15일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 충남 천안시 백석동 유관순체육관 밖에 길게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서산장학재단(이사장 성완종)이 충남의 시·군을 찾아 여는 ‘가을음악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지난달 30일 홍성에서 시작한 음악회는 당진·아산·보령·예산을 거쳐 이날 천안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다. 성악과 대중음악이 함께한 이번 무대엔 테너 박인수(백석대 석좌교수) 교수와 그의 성악가 제자들, 가수 김연자·안치환씨가 함께했다. 포크가수 추가열씨도 모습을 드러냈다.

서산장학재단, 매년 충남서 여는 ‘가을음악회’

오후 7시를 조금 넘겼을 때 박 교수가 조명을 받고 섰다. 그는 이날 노래뿐 아니라 공연 전체의 사회까지 맡았다. 첫 순서로 “보령이 고향이라 집에 오는 마음으로 가을음악회에 왔다”는 추가열씨가 등장했다. 그가 자신의 히트곡을 비롯해 비틀스의 ‘렛잇비(Let it be)’ ‘코스모스 피어 있는 길’ 등 대중에게 익숙한 노래를 부르는 사이 공연장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어 박 교수와 제자들의 무대. 이번 공연을 위해 박 교수는 이탈리아·독일·미국 등에서 연주 활동을 벌이는 제자들까지 모았다. 박 교수를 포함한 5명의 테너와 1명의 소프라노는 KBS ‘남자의 자격’으로 유명해진 ‘넬라 판타지아’, 베르디의 오페라 ‘리골레토’ 중 ‘여자의 마음’, 이탈리아의 칸초네 ‘오 솔레미오’ 등 널리 알려진 곡을 잇따라 불렀다.

“여러분, 타령 한 번 해 볼까요~”라며 관객과 대화하는 듯한 박 교수의 사회로 이어진 노래는 ‘새타령’과 ‘진도아리랑’. 73세의 나이에도 덩실덩실 춤추며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노래하는 박 교수를 따라 관객의 흥도 고조됐다.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른 안치환씨의 공연과 “이 공연을 위해 오늘 아침 일본에서 왔다”는 김연자씨 무대까지. ‘가을음악회’는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음악이 어우러져 2시간30분이 넘도록 계속됐다.

15일 오후 천안 유관순체육관에서 열린 ‘가을음악회’. 박인수 교수(가운데)가 제자들과 함께 노래하고 있다. 신동연 기자

테너 박인수, 가수 김연자·안치환 등 출연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약 4000명. 보통 한 지역에서 3000명에서 5000명, 약 3만 명의 관객이 ‘가을음악회’를 찾았다. 매년 날짜를 꼽았다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생겼을 정도로 지역을 대표하는 공연 브랜드가 됐다.

시작은 1993년이었다. 성 이사장이 올해 음악회 안내책자에서 밝혔듯이 “수준 높은 공연을 가까이에서 관람해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서였다. 대도시처럼 공연문화를 접할 수 없는 지역사회를 위해 재단은 ‘가을음악회’에 공을 들였다. 성 이사장이 직접 박 교수를 만나 “대도시와 지방의 문화 격차를 줄여 보자”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첫해에 서산 한 곳을 시작으로 6년간 서산과 태안에서 제자들을 모아 노래했다.

박 교수는 “함께하자는 성 이사장의 생각이 평소 내가 갖고 있던 것과 같았다”고 했다. 그는 “음악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듣는 게 아니다. 듣고자 하는 욕구는 있지만 기회가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게 음악가의 궁극적인 보람”이라며 ‘가을음악회’에 공감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또 “클래식 음악을 지루해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트로트건 팝송이건 창이건 형식만 다르지 음악은 다 똑같다. 관객은 좋은 음악은 바로 안다”고도 했다. 재단은 설립 2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주제를 ‘성악과 대중음악이 함께하는 가을음악회’로 정한 뒤 박 교수에게 다시 출연을 부탁했다. 12년 만에 다시 찾은 ‘가을음악회’에서 사회자 역할까지 맡은 박 교수는 이날 재단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음악회가 뿌리내리도록 힘써 온 데 대한 감사의 표시다. 박 교수 역시 “성과가 좋다. 어느 네티즌의 블로그에 ‘가을음악회 잘 봤다’는 글이 올라오는 걸 봤다”며 흡족해했다.

“공짜로 음악회 보여 준다니 좀 좋아”
초창기 서산·태안 두 곳에서 열리던 ‘가을음악회’는 10회 때 아산이 더해지면서 공연 장소도 늘어났다. 음악회는 덩치를 키웠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성장했다. 매년 변화하면서 다른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것이다. 초창기엔 성악 무대가 주를 이뤘지만 99년부터는 수준 높은 해외 공연단을 초청했다. 볼쇼이 극장에 소속된 합창단·오케스트라 등이 지역의 소도시를 찾았다. 2006년 14회 공연 땐 ‘추억의 7080 콘서트’라는 주제로 대중가수를 처음 초청했다. 2008년까지 인순이·김수철·조영남·장윤정·김장훈씨 등 가요계 스타들이 무대에 올라 ‘가을음악회’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했다. 지난해 신종 플루 때문에 한 해를 쉬고 돌아온 음악회는 또 달라졌다. 성악가와 대중음악 가수가 한 무대에 선 것이다. 실무를 담당하는 이용기 과장은 “관객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매년 공연이 끝나면 설문조사를 한다”고 했다. 시·군별로 500명에게 ‘어떤 프로그램이 좋았나’ ‘내년엔 어떤 가수의 공연을 듣고 싶나’ 등을 묻는 것이다.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내년 공연의 기획·준비에 돌입하는 셈이다.

당연히 관객의 반응이 뒤따랐다. 이날 천안 공연을 찾은 김아영(42)씨는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지난번에도 천안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는데, 그때까지 못 기다리고 홍성까지 가서 미리 봤다”고도 했다. 친구를 따라 김연자씨의 노래를 들으러 왔다는 송화준(65)씨도 “돈도 많이 들고 이런 걸 볼 일이 없지. 공짜로 보여 준다니 좀 좋아”라고 말했다. “이런 기회가 있어야 성악도 접하게 된다. 잘 모르지만 기대된다”는 김경석(51)씨 같은 관객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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