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국정연설] 시민단체에 이례적 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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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5일 국회 국정 연설에서 시민사회의 양보와 책임을 요구해 눈길을 끌었다.'참여 정부'의 주요 정책 파트너인 시민사회에 쓴소리를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핵심은 대화와 타협이지만 타협 없이 자기 주장만 관철하려고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비민주적 독선"이라며 "대화와 타협의 문화는 정치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국민연금제도 개선▶공교육 개혁▶비정규직 대책▶주요 국책사업 등 차질을 빚고 있는 사회 갈등 현안을 해결하려면 이해집단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연금지급액 인하에 반대하는 이해단체(정치.시민단체 등), 공교육 개혁에 대해서는 내신 조작 등으로 불신을 자초하는 교사집단을 겨냥했다. 그는 특히 "교사들이 스스로 신뢰를 지키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이고 대정부 투쟁만으로는 공교육을 바로잡을 수 없다"고 교사집단의 책임을 강조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정규직이 높은 보호 수준을 양보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노 대통령은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전담병원과 원전수거물 처리장의 예를 들며 지역이기주의에 빠진 일부 지역.시민단체의 행태를 비판했다. 그는 "모든 지역과 집단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시설이나 개발사업에 반대하면 정부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날 대통령의 국정 연설은 시민사회의 '참여'를 최대한 확대하되 대안 없는 반대에는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양보와 책임을 강조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노동계 등 시민사회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한국노총은 이날 성명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의 과보호 탓으로 돌려 노.노 갈등을 유발하는 발언은 대단히 실망스럽다"며 "정리해고제가 도입돼 있고 구조조정이란 칼바람이 불고 있는 마당에 정규직의 과보호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연금제도 개선을 둘러싼 갈등 해소도 낙관할 상태는 아니다. 정부는 연금지급액을 현재 생애소득의 60%에서 50%로 인하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두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노인 전원에게 일정액을 주는 기초연금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어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의 한 위원은 "대통령도 후보 시절 국민연금 지급액 인하에 대해 '용돈 연금'이라고 반대해 혼란을 부추긴 측면이 있다"며 "제대로 개혁하려면 법안 처리를 늦추더라도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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