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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치·렐·렐·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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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 칠레 산호세 광산에 매몰됐던 33명의 광부 전원이 69일간의 사투 끝에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지난 13일 캡슐이 투입돼 구조작업이 개시된 지 22시간 만의 일이었다. 첫 번째로 캡슐을 타고 땅 위로 올라온 광부 아발로스로부터 마지막으로 올라온 작업반장이자 리더였던 우르수아까지 전원이 생환(生還)했다. 기적의 드라마였다. 물론 거기엔 칠레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의 관심과 칠레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 그리고 최첨단 구조장비의 동원뿐만 아니라 작업반장 우르수아의 리더십도 한몫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생환의 원동력은 매몰된 광부들 스스로가 지녔던 “살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이었다. 그것 없이는 그 어떤 첨단장비도, 국민의 열망도, 정부의 지원도, 리더십도 빛을 발할 수 없었다. 결국 절망하지 않는 한 살 수 있는 것이다.

 # 38년 전인 1972년 10월 13일. 우루과이의 젊은 럭비선수 45명을 태운 비행기가 칠레로 날아가던 중 안데스의 산중에 추락하고 말았다. 추락 당시 13명이 즉사하고 다시 눈사태로 사망자가 늘어 45명의 탑승자 중 16명만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영하 30도에 이르는 살인적인 추위와 조금만 걸어도 숨이 막힐 만큼 산소가 희박한 조건을 견뎌내야 했다. 게다가 풀잎 하나 찾을 수 없는 눈 덮인 산중에서 생존자들은 살기 위해 불가피하게 동료 사망자의 인육(人肉)을 먹어야 했을 정도였다.

 # 조난을 당한 후 생존자들은 몇 차례에 걸쳐 탈출을 시도했지만 허사였다. 차가운 백색의 꽁꽁 얼어붙은 세계는 생존에 관한 아무런 단서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난도 파라도는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는 친구 로베르토와 단 둘이서 해발 5000m의 눈 덮인 안데스를 넘어 칠레까지 100㎞ 이상을 걸어 구조 요청에 극적으로 성공했다. 그 덕분에 나머지 동료들도 모두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다. 72일간의 사투 끝에 얻은 기적의 생환이었다. 훗날 난도 파라도는 이렇게 고백하듯 말했다. “안데스 산중에서 우리는 심장의 한 박동에서 다음 박동으로 근근이 이어가면서도 삶을 사랑했다. 인생의 매초 매초가 선물임을 그때 알았다.”

 # 1914년 8월 5일 인듀어런스호는 섀클턴 경을 대장으로 하는 영국의 남극횡단탐험대를 태우고 출정의 돛을 올렸다. 인듀어런스호는 두 달여 동안 대서양을 횡단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11월 5일 남미 최남단 사우스조지아섬의 크리트비켄 포경기지에 닿았다. 그리고 12월 5일 다시 그곳을 출발한 인듀어런스호는 12월 말께 남극 대륙에 닿으리라던 섀클턴의 예상과는 달리 남극 웨들해를 가득 뒤덮은 부빙(浮氷) 속에 갇힌 채 표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와 27명의 대원들이 그 얼음바다 위에서 634일 동안이나 사투를 벌일 것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드라마보다 더한 우여곡절 끝에 섀클턴과 27명의 대원 모두가 다시 문명세계로 생환한 것은 1916년 8월 30일이었다. 사우스조지아섬의 포경기지를 출발한 지 634일 만의 일이었다. 그들의 생환은 남극횡단탐험보다 더 놀랍고 값진 것이었다. 그들 역시 전원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끝까지 절망하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치·치·치·렐·렐·렐! 살아 돌아온 칠레의 광부들과 그들의 생환을 애타게 염원했던 칠레 국민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본 전 세계인이 한목소리로 외친 생환의 감격을 담은 구호다. 이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구호가 됐다. 우리 삶도 너나 할 것 없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전쟁터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에게 살아서 돌아오라는 명령을 내려야 할 정도다. 물론 우리는 날마다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절망하지 않는 한 우리도 살 수 있다.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치·치·치·렐·렐·렐!” 우리가 외칠 차례다.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