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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빌 게이츠처럼… . 국내 부유층 기부센터 열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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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 10주년을 축하한다. 아름다운재단이 추구하는 나눔은 뭔가.

 “전통적 자선은 빵만을 줘왔다. 우리는 그걸 뛰어넘어 새로운 자선운동을 소개하고자 했다. 물고기를 낚는 방법을 가르치고 필요한 장비를 나눠주면서 도움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에게 희망을 주자는 것이다. 기부를 재미있고 손쉽게 만들어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 윤 상임이사가 생각하는 나눔이란.

 “지갑을 열기 전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나눔은 기억, 치유, 자기존재의 확장 등 여러 의미가 있다. 타인의 고통을 기억해 주는 마음이고, 사회적 냉기나 무관심을 깨는 것이다.”

● 기부 프로그램 중 성공작을 꼽는다면.

 “1% 나눔 캠페인 아닐까. 99%를 갖고 한 개만 세상의 것으로 하자는 것이다. 월급 1%, 생활비 1%, 용돈 1%, 축의금 1%와 같이 주제를 끝없이 확장할 수 있다. 굉장한 힘을 보여줬다.”

● 재단으로 인해 한국 기부문화가 변화했는가.

 “기부와 나눔에 관한 고정관념을 바꿔놓았다. 예전엔 기부가 돈 있는 사람의 특별한 선행으로 인식됐다. ‘부끄러워서 1만·2만원을 어떻게 내느냐’ ‘특별한 결심이나 사연이 있어야 기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기부를 생활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부자들의 특별한 선행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로 바뀌었다.”

● 가장 참신한 모금 프로그램을 꼽으면.

 “책 날개를 단 아시아 기금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모국어로 된 책을 지원한다. 동남아로 여행갔다 돌아올 때 그 나라에서 잡지든 동화책이든 책 한 권씩 가져오자는 취지다. 이주자들을 그냥 노동자가 아닌, 자국의 글과 문화를 향유해야 할 인간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유학시절 쓰던 책을 가져오는 이도 있고, 배낭여행 갔다가 책을 사오는 젊은이들도 있다. 한국으로 유학 온 학생들이 책을 분류하는 자원봉사를 해준다.”

● 기부자들의 성원이 가장 컸던 프로그램은.

 “2003년 전기료를 못 내서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켜놓고 공부하다가 남매가 죽은 사건이 있었다. 에너지도 하나의 기본권으로 보고 ‘빛 한줄기 희망기금’을 만들었다. 순식간에 800만원이 모였고, 2차 모금액은 7000만원에 달했다. 전기료를 못 내는 가정에 전기료를 내줬다.”

● 초기 아름다운재단의 대표상품 중 하나가 아름다운가게다. 중앙일보는 아름다운가게가 3호점을 연 2003년부터 21호점을 개설할 때까지 2년 가까이 ‘중앙일보와 함께하는 아름다운가게’ 캠페인을 진행했다. 아름다운가게의 성과는.

 “2002년 10월 재단의 사업으로 출범한 아름다운가게는 2008년 독립법인으로 분리됐다. 전국에 109개 점까지 열었고, 현재 101개를 가동 중이다. 기증받은 물품을 판매한 매출액이 지난해 145억원이고, 그중 35억원을 어려운 이웃에 배분했다. 자원활동가는 5000명에 이른다.”

● 기금 모금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펀드 레이징은 이슈 레이징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모으는 과정이 바로 변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슈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 늘 깨어있어야 한다. 신문 1단 기사에서도 영감을 얻는다. 간사들을 해외 자선대회에 파견하고 연수도 보낸다.”

● 어떤 모금 프로그램들이 성공하는가.

 “시민들은 쉽고 명확한 메시지를 좋아한다. 추상적인 것들이 대개 실패한다. 또 창의적이어야 한다. 지금은 온라인 기부가 흔해졌지만, 우리가 처음 했을 때는 CNN에도 소개됐다.”

● 도움을 받은 사람이 기부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가.

 “2년 전 허름한 차림의 50대 남성이 찾아왔다. 장사를 하다가 망했는데, 전기료조차 없어 자포자기하고 있을 때, 24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했다. 돈도 돈이지만, 자기가 고통스러울 때 누군가가 기억해 주는구나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고 한다. 3년 만에 재기해서 찾아왔는데 첫마디가 ‘늦게 와서 미안해요’였다. 그는 매월 30만원씩 기부한다. 영원히 돕기만 하는 사람도, 도와주기만 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나눔의 선순환을 보았다.”

● 한국의 개인 기부액이 선진국에 비해 많이 낮은가.

 “종교 헌금을 빼면 개인 기부액과 기업 기부액의 비율이 4대 6 정도 된다. 한국은 종교 기부가 전체의 80%이다. 미국의 종교 헌금은 30~40%인 걸로 알고 있다.”

● 개인 기부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은.

 “조세 혜택이 직접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다. 미국은 기부금 공제 비율이 30~50%, 한국은 올해 20%가 됐다. 주식이나 부동산 기부를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법적 개선도 필요하다. 자선단체들도 좀 더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기부는 과학이자 예술이다.”

● 자선단체 간 모금 경쟁도 꽤 있을 것 같다.

 “굉장히 치열하다. 좋은 일에도 이젠 마케팅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감동, 투명성, 효율성이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민단체, 기부운동의 핵심은 투명성이다. 재단이 지난해 거둔 기부금만 해도 174억원이라는 거액이다.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한 장치는.

 “투명하고 성실한 보고를 위해 2007년 기부금을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을 도입했다. 기부자와 기부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홈페이지에 내용을 게시하며, 운영비까지 공개한다. 기부금에서 운영비를 보통 20~30% 쓰는데, 우리는 8%만 뗀다. 운영비를 별도로 모금하기도 한다.”

 윤 상임이사는 2006년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총괄이사의 제안으로 자리를 맡게 됐다. 그전까지는 18년간 여성민우회에서 여성운동을 했다.

● 과거와 현재의 시민운동을 비교하면.

 “과거 시민운동은 대변형이었다. 운동가들이 정책을 만들어 시민들을 ‘대변’했다. 오늘날은 시민들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내게 하는 ‘참여형’으로 바뀌었다. 스스로 결정해 참여하는 게 가장 파워풀하다. 시민들이 각자 삶의 자리에서 작고 의미 있는 실천을 통해 자신의 삶이 변하고, 이웃과 세상이 변하는 것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나는 76학번으로 학생운동 세대다. 늘 거대담론, 변혁, 대중, 법제도 개선에 의미를 뒀다. 그때는 깃발 아래로 모여, 하나의 목소리가 중요하던 시대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목소리가 다양해졌다. 깃발도 여럿, 중심도 여럿, 변화를 꿈꾸는 방법, 실천 방법도 천 가지, 만 가지라는 걸 느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사회만이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한국 사회에서도 부의 이전이 핫이슈가 됐다. 그동안은 절세와 탈세를 통해 부를 대물림하는 게 문화였다. 지금은 부를 다른 방식으로 이전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재산을 오롯이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에 맞춰 부유층의 고액 기부를 상담해 줄 ‘기부컨설팅센터 B’를 열었다. ‘비’는 Beautiful의 B, 준비의 비(備), 레인메이커의 비(Rain)를 뜻한다.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하듯이 부유층으로부터 기부 약속을 받는다. 세무사, 변호사, 회계사가 세금을 비롯한 제반 절차를 컨설팅해 준다.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큰돈을 버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큰돈을 잘 쓰는 것도 행복이다.”

● 기부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봤을 텐데, 그들에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따뜻하고 긍정적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한 공감력이 크다. 사회적 냉기를 못 참는 사람들이다. 기부자를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제가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 자기 삶의 기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꿈을 갖는 것 같다.”


j 칵테일 >> 승진 기념, 금연 기념 기부 ?

누군가를 돕는 데 쓰일 수 있다면 뭐든지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할 수 있다.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기부 선물’을 떠올려 보자.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스승의날, 어버이날에 축하받을 주인공 이름으로 기부하고, 카드와 함께 기부 증서를 선물하면 뜻 깊은 선물이 된다. 스스로 축하할 일을 만들기도 한다. 승진 기념으로 월급의 1%, 금연 성공 기념으로 담뱃값의 1%를 기부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지난 월드컵 때는 베팅 기부도 등장했 다.

 돈이나 현물이 아니면 재능이나 시간을 기부할 수도 있다. 로고나 홍보물을 만들어 주는 디자인 기부도 있고, 광고회사는 행사 포스터를 제작해 주기도 한다. 김민기씨는 연극‘지하철 1호선’ 공연 때 좌석을 기부했고, 작가 신경숙씨는 인세를 기부한다.

 기부자 명의로 공익기금을 개설할 수도 있다. 기부자가 기금의 이름도 짓고, 사용 목적도 정한다. 재단은 기부자에게 정기적으로 사업 내용을 보고한다. 자선재단 하나를 갖는 셈이다. 윤정숙 상임이사는 “누구나 자선재단을 만들 수 없으니 재단이 그 꿈을 실현해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익기금은 현재 187개 있다. 기금에는 기부자의 삶의 흔적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공익기금 1호는 종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김군자 기금’이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기금’은 같은 이름의 책을 쓴 고 전우익 선생이 남긴 인세로 만들어졌다. 은퇴한 기업 임원이 국민연금으로 만든 ‘은빛겨자씨 기금’, 먼저 간 딸을 추모하며 부모가 만든‘미연의 수호천사 기금’도 있다.

 재단의 가장 큰 기부는 아모레퍼시픽 고 서성환 회장 유가족의 기부로 만든 ‘아름다운 세상 기금’이다. 이 기금은 홀로 자녀를 키우는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에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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