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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기획] 45년간 한반도 새 320종 촬영한 유범주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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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사진작가 유범주씨. 오른쪽은 쇠제비갈매기숫컷이 암컷에게 먹이를 먹여주는 장면.

한 시인은 새들이 자기들 세상만 떼어 메고선 어디론가 떠난다고 했다. 무엇이 좋은지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면서. 하기야 펼친 날갯죽지 너비, 딱 그만큼의 하늘만 짊어지면 되는 삶이다. 중력은 잊은 지 오래. 분명 좋긴 할 게다. 아니 그냥 좋은 게 아니라 가슴 터질 듯 자유로울 게다. 바로 이런 자유로움이 좋아 새를 좇아온 이가 있다. 45년 경력의 새 사진작가 유범주(63)씨다.

유씨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다. 대학 전공을 살려 최근 은퇴하기 전까지 40여년간 화공약품 수입판매업체를 운영했다. 아마추어 꼬리표를 뗄 수 없는 이유. 그렇지만 유씨는 조류학회의 회원일 정도로 새에 대해 박식하고, 한국생태사진가협회를 이끌 정도로 사진 실력이 좋다. '프로'가 별 건가. 어떤 분야에 대한 열정과 지식이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유씨는 '왕 프로' 사진작가다.

유씨가 사진과 연을 맺은 것은 대학 신입생이던 1961년. 스무살 치기로 여름여행을 떠나며 카메라를 챙겨넣은 게 '화근'이었다. 서해안 대천에서 동해안 화진포까지. 한달 가까운 바닷가 기행에서 그는 그만 사진에 중독되고 말았다. "집에 오자마자 비싼 카메라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르기 시작했죠. 광고지로 온 집안을 도배한 끝에 힘들게 얻어냈고요. 그 카메라론 미친 듯 사진을 찍었어요. 그런데 수많은 피사체 중 어느 순간 새가 도드라지더군요."

대학 졸업 뒤 잠깐 취직을 했다 곧바로 사장이 되면서 유씨는 새 사진을 잠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바빴기 때문. 틈날 때마다 그저 카메라를 꺼내 쓰다듬기만 했다. 그러다 다시 새들의 곁을 찾은 것은 70년대 초. 회사가 자리를 잡아 여유가 생긴 데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이 태어난 뒤 "애들 사진 찍겠다"는 핑계로 다시 잡은 카메라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유씨는 운명에 순응(?), 주말마다 새를 찾아 나섰다. 새만 찍을 수 있다면, 지독한 고생도 즐겁기만 하던 시절.

"산길을 헤매다 간첩으로 몰려 끌려간 적이 한두번이 아니죠. 한평짜리 위장막을 치고 3일을 버틴 적도 있어요. 빵으로 끼니를 때우고, 용변은 비닐봉지에 해결했죠. 새를 따라 뻘밭을 1㎞ 넘게 긴 적도 있어요. 10년 전쯤인가는 서해안에서 물때를 못 맞춰 휩쓸려 죽을 뻔하기도 했고…."

그간 유씨는 한반도의 새 320종을 기록했다. 어지간한 이들은 200종을 넘기 힘들단다. 특히 긴부리도요 등 5종은 국내 최초로 유씨에 의해 앵글에 잡혔다. 이런 사진들을 모아 유씨는 최근 책을 펴냈다. 제목은 간결하게 '새'. 책을 펼치면, 금방이라도 적요를 깨고 새 한마리 푸득 날아오를 것만 같다.

"새에겐 정해진 길이 없잖아요. 그게 부러웠죠. 그런데 새 사진을 찍고, 새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도 새의 기분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어요. 제 사진들이 다른 분에게도 이런 느낌을 조금이라도 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남궁욱 기자<periodista@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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