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물가보다 환율 잡기 … “고뇌에 찬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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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14일 오전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앞서 입을 굳게 다문 채생각에 잠겨 있다. 배경의 그림은 초대 금통위 모습. [연합뉴스]

“고뇌에 찬 결정이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겸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은 14일 기준금리를 동결한 뒤 이렇게 말했다. 금통위는 이날 현재 연 2.25%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7월에 0.25%포인트 올린 뒤 3개월째 제자리다.

관심은 금통위가 물가와 환율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하느냐였다. 물가는 오름세가 뚜렷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3.6%나 올랐다. 물가안정이 최고 목표인 금통위로서는 금리인상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복병이 있다. 환율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풀린 돈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원화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이는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경제엔 큰 부담이다. 금리를 올리면 내외금리차가 더 벌어져 달러가 국내로 밀려 온다. 결과적으로 원화값을 끌어올리게 된다. 수출이 휘청이면 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

결국 금통위는 환율을 택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먼저 끄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금통위는 발표문에서 “앞으로 주요국 환율의 변동성 확대 등이 세계 경제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김 총재도 “세계적인 환율 전쟁은 한국 경제의 하방위험이 된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물가는 농산물 가격의 일시적 급등 탓이 컸다는 게 금통위 시각이다. 이런 일시적 요인을 제외하면 실제 물가상승률은 2.9%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는 한은의 물가 목표범위의 중간치(3%) 안이다.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국고채(3년물) 금리는 전날보다 0.20%포인트 폭락한(채권값 상승) 3.08%을 기록했다. 사상 최저 수준이던 2004년 12월 7일의 3.24%보다 더 떨어졌다.

주식시장엔 미국시장의 영향이 더 컸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3.61포인트(1.26%) 오른 1899.76에 장을 마쳐 이틀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국에서 양적 완화 정책을 펼 가능성이 커지면서 코스피도 강세로 화답한 것이다. 다만 금리 동결로 금융업종은 하락했다.

문제는 시장과의 소통방식이다. 이미 김 총재는 여러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심지어 그는 “오른쪽 깜빡이를 켰으면 우회전한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동결로 한은의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원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도 세 번씩이나 우회전을 못했다면 초보 운전자”라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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