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의 건강 원한다면 내 안의 양심을 건강케 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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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08면

기(氣)는 스파르타식 훈련의 대상이 아니다. 객기(客氣)는 다스려야 하지만 정기(正氣)는 ‘보존’하고 ‘성장’시켜야 하는 것. 그래서 교기질(矯氣質) 다음에 양기(養氣) 장이 있게 되었다.

한형조 교수의 교과서 밖 조선 유학 : 율곡의 성학집요<17> - 양기(養氣), 건강의 진짜 비결

누가 저 산을 벌거벗게 했는가
사람들은 육신의 기(氣)를 잘 믿지 않는다. 일탈과 공격성, 탐욕과 이기의 위태로운 물건으로만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율곡은 심신의 기를 통해 드러나는 도덕성, 혹은 기 자체에서 발현되는 우주적 특성을 특필하기 시작한다. 율곡의 기(氣)일원론, “오직 기발(氣發)만 있다”는 주장은 이 ‘기의 낙관’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가 퇴계와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원군은 맹자다. 맹자는 주지하다시피 인간 본성의 선함을 춘추전국의 전란, 그 살육의 한복판에서 설파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환경론자들과 달리 “인간에게는 고유한 성장의 방향과 목표가 있다”고 했고, 유전론자들을 향해서는 “타고나는 바의 실제는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저 우산(牛山)을 보라. 지금 벌건 민둥산이다. 사람들은 저 산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던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한때는 짐승들이 뛰놀던 아름다운 산이었으나, 인간들이 집을 짓고 땔감을 대느라 날마다 도끼질이니 견뎌낼 재간이 있었겠는가. 밤의 이슬과 휴식이 새싹을 틔우려 해도 도끼질은 그치지 않고 소나 양이 뜯어먹으니 지금 저렇게 황폐한 산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정황도 그와 같다. 주자는 여기 덧붙인다. “밤은 사물과 접하기 이전의 시간이다. 그때 인간의 (심신의) 기는 청명(淸明)하다. 이 양심의 기는 은미한데 낮의 소음과 작태로 하여 도끼질당하고 손상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밤의 (휴식으로 인한 선한) 기운은 점점 엷어지다가 그만 더 이상 싹을 틔우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저 산의 나무나 인간 속의 ‘어진 마음(仁心)’이 마찬가지 운명이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른다
인간이 타고난 기는 본시 그렇게 쪼잔하거나 혼탁하지 않았다. 우주적 활력과 연대의 산물 아닌가. “이 지대지강(至大至剛)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더 이상 다치지 않게 하고, 잘 보존해서 기르자!”

거듭 강조컨대 이 기는 ‘자신의 특성상’ 도덕적이다. 현대 윤리학은 이 라인 위에 서 있지 않다. 도덕을 늘 자연에 반하는 강제와 의무에서들 논하는데, 그래서는 실효성은 물론, 인간성의 실현을 운위하기 어렵다. 주자학은 본래의 본성을 회복하는 것, 그 자연을 최고도로 실현하는 것을 윤리요, 삶의 책무라고 본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행복한 길이다.

이 기의 양성은 안팎이 협력한다. 안으로는 자기 내부의 도덕적 태도를 유지 보존(志氣)해야 하고, 밖으로는 외부의 유혹과 자극에 의해 혈기(血氣)가 동요되지 않아야 한다. 밖의 유혹은 여러 가지가 있다. 논어는 “젊을 때는 색(色)을, 장년에는 (명예 등) 투쟁을, 늙어서는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일상적으로 절제해야 할 것은 ‘언어’와 ‘음식’이다. 바깥의 경계와 절제는 안의 기를 안정시키고 성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식스팩과 다이어트 열풍은 안전한가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지난번 어느 대학 졸업식장에서 갈파했듯, 그렇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않고 행복은 오지 않는다. 아울러 도덕적 태도의 지탱 없이 이 기(氣)는 발양될 수 없다. 건강하고 싶은 자, 헬스와 다이어트에 목맬 일이 아니라고 주자학은 조언한다. 퇴계는 오로지 몸짱 식스팩만의 지향이 마침내 ‘본성을 다치는 지경(賤性)’에 이를 것이라고 탄식한 바 있다.

건강한 심신을 가지고 싶은 자는 주자의 선배 정이(程<9824>, 호는 伊川, 1033~1107)의 사례를 깊이 참고해야 한다. “내 나이 지금 72세다. 근골은 한창때 못지않다.” 앞에 선 사람이 물었다. “타고나기를 약골이셨으면서 어떻게 그처럼 익장(益壯)하십니까.”

이천은 잠시 뜸을 들인 다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생명을 잊고 욕망을 추구하는 것(忘生徇欲)을 수치로 여긴다네.” 『서명(西銘)』을 쓴 장재(張載, 호는 橫渠, 1020~77)가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그저 건강(康)에 연연하고 헬스(强)를 다녀 되는 일이 아니다. 양생은 천리(天理)를 따라야 한다.” 한번은 이천의 용모 안색이 전과 훌쩍 다른 것을 보고 제자들이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학문의 힘이다!”라고 했다.

인간은 우주적 창조의 협력자
율곡은 이 소식을 종합하여 말한다. “천지의 기화(氣化), 그 우주적 창조력은 무한하고 한순간도 쉬지 않습니다. 사람의 기는 이 천지와 통해 있기에, ‘도덕적 마음(良心)’과 ‘생명력(眞氣)’ 또한 그와 더불어 자랍니다. 다만 이 기운을 다치게 하는 요소가 많기에 생장하는 힘이 꺾는 힘을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도 찍어대니 마음은 금수로 떨어지고, 생명력은 고갈되는 것이니, 두렵지 않습니까. 양심을 해치는 것은 감각적 욕망들입니다. 눈, 코, 귀, 입의 경도가 오장(五臟)을 상하게 하고, 안일에의 욕구가 근골을 녹입니다. 그리하여 행동이 절도를 잃게 하고, 희로(喜怒)가 균형을 흩트리게 합니다. 이래서야 이 땅에 선 책무와 삶을 어떻게 완성하겠습니까.”

율곡은 이어 자기 삶의 길을 이렇게 정위했다. “그런 즉 양심(良心)과 양기(養氣)는 결국 같은 것입니다. 양심이 날마다 자라고 해치는 바 없다면, 그리하여 그 폐단을 다 제거한다면 호연지기가 성대(盛大) 유행(流行)하여 마침내 천지와 더불어 그 역할(體)을 같이하게 될 것입니다. 살고 죽음에 비록 운명이 있다 하나, 내게 주어진 도(道)는 결국 다하는 셈이니, 떳떳하고 흔쾌하지 않겠습니까. 전하는 유념하소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전한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주희에서 정약용으로』『조선유학의 거장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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