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사진의 도전에 맞서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7호 08면

1 ‘목줄을 한 개의 역동성’(1912), 자코모 발라(1871~1958) 작, 캔버스에 유채, 90x110㎝, 올브라이트-녹스 아트 갤러리, 버펄로

이탈리아 화가 자코모 발라(1871~1958)가 그린 ‘목줄을 한 개의 역동성’(사진 1)을 보면 웃음부터 나온다. 루니 툰스 만화에서 코요테와 로드러너가 쫓고 쫓기면서 수많은 발을 보이며 쌩 하고 달려가는 장면 같아서 말이다. 또는 그걸 대담무쌍하게도 실사로 재현한 주성치 영화 ‘쿵푸 허슬’ 장면이라든지.

문소영 기자의 명화로 보는 경제사 한 장면 <15> 기계를 사랑한 화가들

발라 자신도 이 그림을 전혀 웃음 없이 그리진 않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이 그림은 사뭇 진지한 작품이다. 20세기 초 화가들이 어떻게 하면 새로운 문명의 속도감을 화폭에 담을 수 있는지 고민한 것에 대한 한 가지 답인 것이다.

2 ‘공간에서의 독특한 형태의 연속성’(1913), 움 베 르 토 보 초 니(1882~1916) 작, 브론즈, 높이 111.4㎝, 뉴욕현대미술관(MoMA), 뉴욕

이 그림은 19세기 말에 처음 나온 연속동작 사진, 즉 한 장의 인화지에 인간이나 동물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기록한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렇게 움직이는 존재의 여러 잔상이 한 화면에 나타나면 보통의 그림이나 사진에서 느끼기 힘든 속도감과 역동성이 느껴진다. 발라의 그림 또한 닥스훈트 강아지가 짧은 다리를 재게 놀려 쫄랑쫄랑 주인을 따라가는 움직임을 생생하게 전달해서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든다.

발라를 포함한 20세기 초 미술가들은 급변한 시각환경에 대응해 새로운 이미지를 구현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주변 풍경은 옛 화가들의 그림 속 전원처럼 몇 시간이고 고요히 정지해 있지 않았다. “트르르르르 트르르르르르 소리가 나는 사거리… 구급차의 사이렌과 불자동차… 수은등 빨강 빨강 빨강 파랑 보라 뱀처럼 꼬리치는 대형의 금색 글씨.” 이탈리아 시인 필리포 F 마리네티(1876~1944)는 자동차, 소음, 조명과 네온사인으로 어지러운 현대도시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3 ‘여가 -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1948~49), 페르낭 레제(1881~1955) 작, 캔버스에 유채, 154x185㎝, 국립 퐁피두센터 소장, 파리

20세기 초 화가들은 이렇게 눈이 핑핑 돌아가는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작품에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또 사진의 도전에 맞서 사진과는 다른 시점과 구성을 보여줄 필요를 느꼈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대체 뭘 그렸는지 알아먹기 힘든’ 그림들이 줄지어 나온 것이다. 당시에 시각적 경험의 새로운 재구성을 제시한 대표적인 두 유파로 파블로 피카소(1881~1973) 등이 이끈 프랑스 입체파(Cubism)와 마리네티가 이끌고 발라도 동참한 이탈리아 미래파(Futurism)가 있었다.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은 잘 알려진 대로 앞, 옆, 위 등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모습을 결합해서 한 화면에 종합적 시점으로 표현했다. 반면 미래파 화가들은 움직이는 사람이나 물체의 시시각각의 추이를 한 화면에 잔상과 ‘면(面)의 상호 침투’를 이용해 표현했다.

미래파 예술가들은 기계문명의 속도와 힘과 새로움에 열광했다. 반면 고전 예술과 모든 낡은 것들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거의 증오하는 경향까지 보였다. 사실 이들의 성향은 ‘목줄을 한 개의 역동성’에 나타나는 귀여운 익살스러움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이들은 철없는 스피드광 청소년 같은 성향이 있어서, 속력과 무력이 동원되고 낡은 것들이 파괴되는 가장 극단적인 사태- 전쟁 -에 대해 어떤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

마리네티는 1909년 ‘미래주의 선언’에서 “우리는 전쟁을 찬양한다-그것은 세상을 보전시켜 주는 유일한 건강요법”이라는 주장을 했다. 미래파의 또 다른 미술가 움베르토 보초니(1882~1916)는 이런 신념에 따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34세도 채 안 된 젊은 나이에 전사했다. 그가 죽는 순간에도 전쟁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고수했을지는 미지수다.

어쨌거나 보초니가 요절한 것은 미술사에서 안타까운 손실이었다. 그는 매우 탁월한 미술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브론즈 ‘공간에서의 독특한 형태의 연속성’(사진 2)을 보면, 인간 비슷한 형상이 걸어 나아가면서 그것을 보는 사람의 잔상에 따라 형상의 윤곽선이 뒤쪽으로 바람에 날리듯 물결치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이 조각은 이렇게 윤곽선은 가볍게 나부끼는 듯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금속의 무게감이 있기에, 무거운 존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강인한 동력이 느껴진다. 정지된 덩어리일 수밖에 없는 조각에서 속도감과 역동성이 느껴지도록 만든 보초니의 재주에 감탄하게 된다.

이렇게 미래파 미술가들은 뛰어난 창조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미술사에 입체파만큼의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후에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겪은 사람들이 미래파 화가들이 전쟁을 찬양하고 특히 마리네티가 무솔리니를 지지한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미술사가들은 “미래파 화가들이 활동할 당시에 이탈리아가 다른 서유럽 국가들보다 공업화가 훨씬 뒤처져 있었기 때문에 미래파 화가들이 그렇게 철없이 기계문명의 좋은 면만 볼 수 있었다”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미래파만 기계에 우호적인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의 입체파 화가인 페르낭 레제(1881~1955)는 사회주의자이면서 기계문명에 낙관적이었다. 그는 기계화 때문에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리라고 걱정하기보다, 기계화로 인간의 삶이 보편·평등해지고 노동자들이 더 많은 여가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간을 묘사함에 있어서도 기계 같은 원통형으로 묘사했다.

그의 ‘여가-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사진 3)는 2년 전 우리나라에서 열린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특별전’에도 나와 잘 알려진 작품이다. 레제는 2차대전을 피해 미국에 있는 동안 미국의 자본주의적 기계문명과 사람들의 ‘점잖지 못한 옷차림’, 이를테면 자전거 여행이나 하이킹 중에 입는 요란한 색깔의 스웨터나 짧은 바지에 은근한 매력을 느꼈다. 그 매력을 그의 사회주의적인 메시지와 독특하게 결합한 것이 바로 이 그림이다. 대체 어떤 메시지일까?

퐁피두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이 그림은 노동자들을 위한 유급휴가 도입을 지지하는 의미라고 한다. 유급휴가를 도입함으로써 과거 귀족이나 부르주아지의 전유물이었던 여가를 노동계급도 마음껏 누리게 해 그들만의 아르카디아(전원적 낙원)를 추구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여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계문명이라는 생각을 그는 버리지 않았다.

환경주의 미술가들이 많은 오늘날, 우리는 예술가들이 언제나 기계문명을 싫어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기계를 사랑한 화가들은 이렇게 의외로 적지 않았다.



문소영 기자

영자신문 중앙데일리 문화팀장. 경제학 석사로 일상 속에서 명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찾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관련 저술과 강의도 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