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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찰자 정해놓고 들러리들 바람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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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006∼2008년 진행된 성남 판교의 아파트단지 건설공사에 참여한 국내 중대형 건설회사들이 대규모 입찰 담합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일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발주한 성남 판교 9공구 등 8개 아파트 건설공사에서 진흥기업 등 모두 35개 건설회사가 입찰 담합한 사실을 적발하고, 이들에 423억8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조사 과정에서 담합행위를 스스로 신고한 자진신고자가 있었기 때문에 실제 과징금 규모는 이보다 약간 적다. 공정위는 가장 먼저 자진신고하고 조사에 협조한 기업에는 과징금 전액을 면제해 주고, 2순위 신고자에는 과징금의 50%를 깎아 준다.

공정위는 ‘자진신고자 감면제’ 원칙에 따라 자진신고한 건설회사를 공개하지 않았다. 업체별 과징금 규모는 진흥기업이 50억39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진흥기업을 포함해 과징금이 10억원이 넘는 업체도 13곳에 달했다.


적발된 건설사는 낙찰받을 회사(추진사)와 나머지 회사(협조사)를 미리 정한 뒤 입찰에 참여해 8개 공사에서 예외 없이 모두 미리 정해 놓은 추진사가 낙찰받도록 했다. 추진사들은 협조사들이 제출할 공종별 세부 투찰내역을 미리 작성해 이동식 저장매체(USB)에 담아 입찰일 전일 또는 당일 협조사에 전달하고, 협조사들은 전달받은 투찰내역 그대로 입찰에 참여했다. ‘공종’은 전체 공사를 여러 개의 부분으로 나눈 것으로, 아파트 공사의 경우 가설공사·철근콘크리트공사 등 30개의 공종으로 나뉜다.

특히 이들은 입찰 참여자들의 공종별 입찰금액에 따라 공종별 기준금액이 변동될 수 있는 ‘최저가낙찰제’의 특성을 이용, 담합에 참여하지 않은 정상적 입찰 참가자들을 탈락시키고 특정 입찰자가 낙찰받을 가능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담합했다. 또 추진사는 입찰이 종료된 뒤 공정위에 적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협조사에 전달한 이동식 저장매체를 회수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담합을 주도한 추진사뿐 아니라 입찰에 들러리를 섰던 협조사들도 처벌을 받았다. 공정위 송상민 카르텔총괄과장은 “입찰에 들러리를 섰어도 참여·개입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법 내용에 대한 업체들의 인식이 낮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입찰 담합은 대다수 서민에게 내집 마련의 꿈이었던 성남 판교신도시 아파트 등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아파트 분양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등 서민들의 주거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경호 기자

◆최저가 낙찰제=물품이나 용역 등을 구매하기 위해 입찰할 때 예정가격 이하이고 최저가격으로 입찰한 자를 낙찰자로 결정하는 제도다. 공사입찰의 경우 추정가격 300억원 이상인 공사를 대상으로 실시한다. 입찰가격에 대해 1단계와 2단계 심사를 거쳐 최종 낙찰자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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