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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대중잡지 펴내는 무역업자 출신 고서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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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김준목 편집주간이 소장하고 있는 희귀 고서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15일 창간호가 나온 인문학 대중잡지 '안띠꾸스(Antiquus.오래된 것들)'의 편집주간 김준목(43)씨. 그의 전공은 화학(학사).행정학(석사)이다. 5년 전까지는 건축자재 등을 수입하는 무역상이었다. 인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전력이다.

그는 자신의 '변신'에는 두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은 그에게 꿈을 줬고, 또 한 사람은 그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첫 만남은 1990년대 초. 업무차 찾은 로마에서의 어느날 테르미니 역에서 같은 장소만 계속 그리는 길거리 화가를 만났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흘러가는 시간을 그린다"고 답했다. 루디 마루나라는 사람이었다. 즉석에서 파스텔화 두 점을 샀더니 감격한 마루나가 집으로 초대했다. 마루나는 창고에 10만여 권의 고서를 쌓아놓고 있었다. 그의 본업은 고서적상이었고, 그림은 취미였던 것이다. 마루나는 그날 1600년에 발간된 고서 한 권을 선물했다. 이 책에는 로마 문장가 키케로가 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썼다는 글 '위안에 관하여(De consolatione)'도 수록돼 있었다.

마루나는 90년대 후반 "내 심장을 빼어주는 것 같다"면서 1573년 오스트리아 알베르투스 황제가 소유했던 희귀본 성경(BIBBIA SACRA)을 '저렴한' 가격(1억원)에 넘기기도 했다.

둘의 교유가 깊어지면서 그도 어느덧 3000여 권을 소장한 고서 수집가가 돼 있었다. 40대에 접어들면서 김씨는 진로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무역상으로서 시장에서 통할 만한 최신 상품을 찾아내는 게 큰 스트레스였다. 마루나에게 "너처럼 여유롭게 살고 싶다"고 토로했더니 그는 대뜸 "그렇게 살아"라고 했다. 그는 결국 사업을 정리하고 고서적상으로 나섰다.

두번째 만남은 지난해에 있었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참여, 고서 부스를 운영하면서 박경주 타라TPS 세이북스 사장을 만난 것이다. '인문학이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생각을 공유한 둘은 곧 의기투합했다. 인문학 대중잡지를 내기로 하고 그가 콘텐트를, 박 사장이 자본 등 나머지를 맡기로 했다. 발행인이 된 박 사장에 대해 그는 "내가 꿈꿔왔던 일을 가능케 해준 인물"이라고 했다.

김씨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고서 전용 도서관을 짓고, 한쪽에 와인 창고를 만드는 것이다. "영혼과 육체를 동시에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며 운영해보고 싶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글.사진=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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